[불금 VIEWS]'끝까지 피운다'…처절한 골초의 과학

담배값 인상에 대처하는 최후의 한 모금

▲2014년 재떨이에는 장초가 많았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담뱃값이 두 배로 올랐어요" "나라에서 인자 우리 건강까지 챙겨 준다고 하네예" "값을 거시기 올려 불면 담배 못 핀다고? 참 허벌나게 고맙소잉" "어유, 나라가 언제 적부터 백성 건강까지 챙긴 겨? 참 징허네유" "우리끼리 방법을 찾아보더래요"강원, 충청, 전라, 경상, 서울 할 것 없이 새해부터 담뱃값 인상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담배를 둘러싼 비장한(?) 과학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담배에 포함돼 있는 니코틴과 타르가 건강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느냐를 규명하는 기초연구과학 분야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두 배 뛴 담뱃값에 스스로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를 두고 '상식의 과학'과 '비장한 과학'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중이다.  처절한 과학이다. 무 자르듯 딱 끊지 못하는 이들에게 담배에 대한 상식의 과학은 비장하다. 비장함 뒤에 감춰진 날선 눈초리는 정부를 향한 날카로움이다. 나라가 언제부터 국민의 건강까지 챙겼느냐는 것이다. 솔직히 '까발려' 세금 더 걷겠다고 말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 걷히는 그 세금,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 쓰이는지 감시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장초의 추억 "한대라도 끝까지 필겨"=지난해엔 그렇지 않았다. 흡연할 수 있는 공간에 마련돼 있는 재떨이에 장초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2015년 을미년의 재떨이는 그렇지 않다. 담배꽁초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필터 끝까지 탄 것이 대부분이다. 과천정부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요즈음 재떨이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과천청사는 건물 바깥으로 나가 지정된 장소에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  최근 담배 피우러 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특징도 나타났다. 지난해 A씨는 장초를 가끔씩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나쁜 습관(?)'이 올해 싹 사라졌다. 값이 곱절로 오른 담배를 지난해와 똑같이 대접했다가는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값씩 피던 사람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에 2500원짜리 담배를 하루에 한 값씩 핀 사람은 1년에 총 91만2500원을 부담했다. 올해는 값 당 4500원이니 164만2500원이다. 담배 한 개비에 들어 있는 피부로 느끼는 체감 가격에 차이가 크다. 장초를 버리는 것은 '돈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일단 한 개비에 불을 붙이면 필터에 다가올 때까지, 점점 타들어 가 손에 뜨거운 불기운이 느껴 질 때까지 피우는 습관이 무르익고 있다. A씨는 "재떨이에서 장초를 찾기 힘든 현실에서 담뱃값 인상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체재 추억 "쎈 놈으로다 살꺼라예"=올해는 독한 담배가 잘 팔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만난 직장인 B씨는 "타르 함유량이 높은 담배를 사고 있다"고 귀띔했다. B씨는 지난해 2500원짜리 타르 함유 1㎎의 담배를 피웠다. 순하다 보니 시간당 많은 담배를 피웠다. 올해 금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힌 B씨는 4000원짜리 긴 개비로 이뤄져 있는 4㎎ 타르 함유의 담배로 갈아탔다. B씨의 고육지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4㎎의 높은 타르 함량을 가진 데다 개비가 길기 때문에 한 번 필 때 한 개비를 다 못 피운다는 것이다. A 씨는 "타르 함유량이 높다 보니 4㎎ 담배 한 개비를 반쯤 피고 나머지 장초를 가지고 있다 나중에 다시 피운다"고 설명했다.  수학적으로 보면 '4㎎ 담배 1개비=1㎎ 담배 2개비'의 등식이 성립된다. 지난해 하루에 1㎎ 담배 한 갑을 피운 B 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이틀에 한 값의 4㎎ 담배 한 갑을 소화하는 셈이다. 이를 계산해 보면 지난해 91만2500원을 부담했던 B 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올해 73만원의 비용으로 부담을 스스로 낮췄다. '센 놈'으로 바꿔 타면서 담배가격 인상에 맞선 셈이다.  

▲2015년 재떨이엔 필터끝까지 핀 꽁초만 가득하다.

◆지난해의 추억 "나에게는 거시기 5갑의 담배가 남아 있당게요"=지난해 연말 자영업자 C씨는 편의점 순례 길에 나섰다. '담뱃값 인상! 철회하라!'며 1인 시위를 위한 시위의 순례길이 아니었다. 편의점 12곳을 돌면서 그는 '2500원짜리 담배 12척'을 건조했다. 11번째 편의점에서 담배를 산 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면서 그만둘까 C씨는 고민했다.  그때 최근 본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12척'의 배가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올랐다. 끝내 C씨는 12번째 편의점에 들렀고 결과적으로 '12갑의 담배'를 손에 쥐었다. 그는 2500원짜리 이 담배를 현재 아껴 피우고 있다. 올해 들어 인상된 담배는 사지 않았다.  C씨는 "5갑이 아직 남았다"며 "지난해 구입한 담배 5갑이 모두 없어지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남아있는 5척(?)의 담배를 태우는 동안 금연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흡연할 것인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C씨의 마음은 정초부터 산란하기만 하다.  ◆감시의 추억 "늘어난 세금 어떻게 쓰이는지 지켜보더래요"=4500원짜리 한 갑에는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부가가치세 433원, 개별소비세 594원 등 총 2477원의 세금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유통마진과 제조원가는 1182원, 건강증진부담금은 841원이다. 건강증진부담금은 지난해 354원에서 487원이나 올랐다. 올해 건강증진기금으로 약 3조2762억원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치는 지난해보다 40.5%나 증가한 규모이다.  국민들은 여기에 매서운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막대하게 조성된 건강증진기금이 금연홍보는 물론 금연 보조제 제공 등 전적으로 비가격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냐는 부분이다. 올해 담배 값 인상으로 세수가 얼마나 증가할 것인지는 기관마다 차이가 있다. 적게는 2조8000억에서 많게는 5조6000억원까지 예상하고 있다. 약 3조원의 추가 세수가 걷힌다고 가정해 보자.  3조원의 돈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일당 노동자가 하루 10만원을 받는다고 보면 1명의 연봉은 3600만원이다. 약 8만3333명의 일당 노동자가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돈이다. 1년에 1000만원 학비를 내는 대학생의 경우 무려 30만명의 학비 규모이다.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몸을 뉘이기도 힘든 쪽방 촌에 살고 있는 취약계층에 한 달에 10만원씩 지원한다고 가정한다면 1년에 250만명의 쪽방촌 취약 계층이 지원받을 수 있는 돈이 3조원이다.  담배세는 흔히 '가난한 이들의 세금'이라 부른다. 돈 많은 자들보다 가난한 이들이 담배를 더 많이 피우는 경향이 있다. 한 개비의 담배로 고단한 하루에 대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담배가 건강에 안 좋을 것이란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분명한 것은 '가난한 이들의 세금'으로 세수가 증가된다는 데 있다. '가난한 이들의 세금'이기 때문에 그 증가분은 이들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세수 증가액이 어떤 방법으로 어느 곳에 사용됐는지 연말에 꼼꼼히 따져봐야 할 이유이다. 담뱃값을 올린 정부가 정작 이 추운 겨울날. 한 끼 밥을 걱정하는, 하루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높은 고공에서 차별을 없애라고 외치는, 등록금 마련하느라 아르바이트에 지쳐 쓰러지는, 각종 사고의 진실을 알고 싶다고 부르짖는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에 약 100만원 버는 사람에게 "돈도 없는 사람이 담배 사필 돈은 있어? 끊어!"라고 비꼬고 윽박지르기 보다는 이들이 담배를 끊을 수 있는 행복지수를 높여줘야 하는 게 정부의 몫이지 않을까. 그 행복지수는 이들이 내는 세금이 이들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때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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