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 건축을 되새기다

1968년 서울 종로 세운상가 전경.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제공.

조선총독부 모습.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제공.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우리에게 근대 건축이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선총독부, 화신백화점, 국도극장, 스카라극장 등 당대의 정치권력과 사회문화적 변화상을 대표적으로 드러냈던 건축물들은 그 '철거'가 좋았든 나빴든 간에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런 가운데 살아남아 지금 우리와 호흡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한 그러한 건축 안에 살아남은 가치는 무엇이고, 어떤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근대건축물 각각에 담긴 시간과 사건을 포착하고, 우리의 기억을 환기하게 하는 두 개의 전시가 열리는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소격동)과 과천관(막계동)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건축 전시들이다. 우선 서울관에서는 미술관 2층과 일제 때 만들어진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빨간 벽돌을 보존한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에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장소의 재탄생: 한국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이라는 전시제목이 의미하듯 근대건축의 지속 가능성을 상징한다. 최근 들어서야 우리의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사료 수집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이번 전시는 이 같은 흐름을 사진, 스케치, 도면, 모형 등 각종 사료들로 시각화했다.

공간사옥, 1977년 개축공사 모습. 공간건축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진 김용관.

우리나라 근대건축은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서양 양식의 건축물로부터 출발한다. 전통건축과 충돌하며 당대 시민들의 인식에 자리를 잡아간 근대 도시풍경은 그 자체로 신세계였다.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심 속 많은 건축물이 사라졌지만 과거의 풍경을 유지하는 건축들이 있다. 1925년 경성역은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난 뒤 신역사가 생기자 '문화역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됐다. 명동의 한복판에 위치한 '명동예술극장'은 근대건축의 흥미로운 역사를 보여준다. 원래는 1930년대 일본인들을 위한 위락시설로 일본영화를 주로 틀었던 극장 '명치좌(明治座)'라는 곳이었다. 광복 후 시간이 흐른 뒤엔 국립극장으로 사용되다가 남산에 새 국립극장이 생기면서 헐릴 위기에 처했던 이 건물은 당시 문화인들의 보존운동을 통해 2009년 명동예술극장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보존 근대건축 1호' 사례다.전쟁 후 척박했던 한국건축 토양위에 서양의 것이 아닌 우리만의 진보적인 건축을 꽃피우려는 건축가들이 남긴 건축물들도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유휴지로 남은 과거 건축물이 현대 건축가의 손을 빌려 이름을 얻고, 생명력을 갖게 된 사례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서울 강남으로 이전한 휘문고와 밀집한 한옥들 사이에 위치한 공간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이 1977년 김수근의 설계로 개축 공사 중인 장면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서양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인 김중업이 설계한 안양의 유유산업 공장은 최초의 건축박물관인 '김중업 박물관'(박제유 건축가 설계)으로 올해 새롭게 태어났다. 1960년대 등장한 대형건축물 중 대표격인 '세운상가'의 자취들도 확인할 수 있다. 존립과 철거의 찬반론이 뜨거운 세운상가는 도시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점과 해법을 동시에 담고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은 옛 역도경기장으로 쓰였다. 사진은 1986년 역도경기장 모습.

과천관에서는 '힐튼호텔'(1983년 개관), '국립역도경기장(현 우리금융아트센터)'(1986년), '서린동 SK사옥'(1999년) 등을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성은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에서 20세기 대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사사한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우리나라 초기 모더니즘 건축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의 건축은 기술과 절제미가 특징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 건축의 경향에 대해 "국제적으로 보편적 건축인 모더니즘에 대항해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은 1960년대 후반부터 15년 정도 이어졌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단명했다"며 "'네오 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있듯이 모더니즘을 반추하면서 그 안에 장소성과 상징성을 부여하는 건축에 대한 담론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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