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 장애인 시설인 '희망의 집'을 방문, 뇌성마비 아이에게 다가가자 시선을 외면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는 아이의 모습. 사진/MBC 뉴스 장면 캡처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 장애인 시설인 '희망의 집'을 방문, 뇌성마비 아이 입속에 손가락을 쑤욱 집어넣은 장면.사진/MBC 뉴스 장면 캡처
"이 감명을 어이할꼬 ?", "사랑보다는 증오와 미움을 더 많이 품고, 세상사에 휩쓸려 대충 살아온 이에게 어쩌라고 ?" 가슴 한복판으로 큰 바윗덩이 하나가 '쿵 !' 떨어졌다. 순간 몸 전체가 휘청였다. 생애를 통 털어 온 몸이 무너질 것처럼 이보다 강렬하게 무엇인가에 짓눌린 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 뿐이 아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이 '아' 하며 탄식했다. 혹은 한숨 같기도 했다. 특히 '사랑의 연수원'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교황을 지켜보던 4000여명의 수녀들은 일제히 얼어 붙은 표정이었다. '아이는 서너살쯤 됐을까 ?' 교황이 다가가서 눈을 맞추려는 데도 흐릿한 눈빛으로 손가락 빨며 딴 곳을 응시했다. 아마도 다음날 '교황의 굴욕'으로 언론에 대서특필이라도 될 법한 장면이다. 헌데 교황이 한손으로 손가락을 빠는 아이의 손목을 잡는 듯 하더니 검지 손가락을 입속으로 쏙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 그리곤 한동안 아이가 손가락을 빨도록 지켜봤다. (정말로)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충북 음성 꽃동네 아이들은 두번 버려진 아이들이다. 엄마에게 버려지고, 사회에서도 버려져 더 이상 갈 곳 없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도 엄마의 젖을 제대로 빨지 못 했을 터다. 교황은 그렇게 아이에게 엄마의 젖꼭지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물려 주고는 한동안 은은한 미소를 날리며 그윽한 눈길로 아이를 바라봤다. 그제사 아이는 '비바 ! 파파 !'의 마음을 읽은 듯 교황과 눈을 마주쳤다. 이어 교황은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은 채 한동안 아이 앞을 지켰다. 연출된 행동이라기에는 몸에 밴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아이에게 손가락을 물리는 교황', 그곳에는 어떤 권위도 위엄도 없는, 그저 인자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렇다. 이는 젖가슴 대신 손가락을 물린 모성 가득한 엄마로 변신, 아이의 갈증을 풀어 주고 싶은, '파파의 행위예술'이다. 교황의 손가락은 참으로 숱한 말들을 대신 하며 고통받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는 '파파의 상징' 언어다. 교황의 손가락에서 젖이 나오지야 않겠지만 젖을 주고 싶어 하는 교황의 마음만은 '기적'보다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제껏 어릴적 크리스마스날과 군대시절 휴일 빵 타먹으러 간 적 말고 교회 근처도 안 가 본 무신론자이기를 신조로 여겨온 기자의 삶마저 송두리채 뒤흔들고 만다. 누구라도 그 장면을 봤다면 아마도 설명할 말이 생각나지는 않을 것이다. 좀더 의미를 붙여 새로운 밀레니엄 안에서 가장 인간애가 가득한 퍼포먼스라고 말하고는 싶다. '늙은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에게 손가락을 물려 소통하고, 대화하려는, 그 간절함이라니......' 어떤 이는 "가장 높은 사람의 가장 낮은 자세"라고도 했고, "손가락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대신한 우리 시대의 성자"라고도 했다. 그런 말에 교황이 달가워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800년전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가 진물 흐르는 나병환자를 껴안은 이래 21세기 한반도의 산골마을 '꽃동네' 한편에서 재현된 퍼포먼스는 문득 프란치스코(교황)에게서 '프란치스코'(아시시의 성인)를 연상케 한다.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제 시절, 무릎을 꿇고 에이즈 환자의 발을 씻겨주던 우리 시대의 성자와도 겹쳐진다. 가난하고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에게 무한히 다가가려는, 낮은 몸짓에서 물질과 탐욕에 찌든 우리의 모습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이 장면은 교황이 14일 방한 이후 가장 감명 깊은 장면으로 꼽을만 하다. 방한 첫날,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한 손으로는 유가족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에 얹고, '울 듯, 웃을 듯, 슬픈 듯, 분노한 듯, 애뜻한 듯' "꼭 기억하겠다"며 몹시 애매하면서도 절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장면과 쌍벽이다. 이제까지 교황은 '평화', '정의', '희망', '청빈' 등 숱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감명은 '은은한 미소', '절절한 표정', '환한 웃음'을 능가하지는 못 한다. 오히려 '3종 표정 세트'에서 그야말로 '인간' 프란치스코의 진면목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한국 천주교에게는 '순교자 124위 시복' 못지 않은 교황의 선물로 비쳐진다. 당연히 이 서사의 주인공은 교황과 뇌성마비 아이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 천주교와 음성 꽃동네를 일군 사람의 땀과 진심이 담겨 있다. 폭염 속, 수많은 갈등과 반목에 지친 우리들에게도 '미리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기는 마찬가지다. 아이가 교황의 사랑을 받고 입에서 손가락을 떼게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 앞으로 남은 일정속에서 교황은 어떤 기적을 보여줄 지 자못 기대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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