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진평(陳平ㆍ?~BC 178)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건국에 크게 기여했고 고조 사후에는 여태후 일족을 몰아내고 유씨 왕조를 부활시킨 고조의 개국공신이다. 그는 허난성 란카오현의 빈한한 가문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였고 무위자연을 강조하는 황로술에 조예가 깊었다. 진나라 말 진승ㆍ오광의 난 이후 위무지의 소개로 유방에게 발탁되어 장수를 감독하는 호군중위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주발, 관영 등 유방의 장수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위왕, 서초패왕 등 여러 군주를 섬겨 과거의 행실이 깨끗지 못하고, 뇌물을 즐겨 받았다는 험담이었다. 그는 "위왕은 저의 책략을 쓰지 않았고 항우는 오직 자신의 일족만 중용했기에 떠난 것이다"라고 해명하고 자신이 빈털터리라 돈을 받지 않으면 군자금이라도 써야 할 형편이었다고 변명하였다. 이후 누구도 더는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평은 평생 여섯 차례 기책을 내놓아 유방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한다. 항우와의 형양 전투에서 유방은 위기에 처하였다. 배 이상의 병력으로 압박해오는 항우군에 속절없이 밀리는 형국이었다. 그는 반간계(反間計)를 쓰도록 건의하여 황금 4만근으로 항우 측의 장수들을 매수하였다. 항우의 책사 범증은 유방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며 기습전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범증은 항우를 떠났고 유방도 사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명장 한신은 왕으로 임명되기를 바랐다. 자신의 권세를 넘본다고 생각한 유방은 격노하였다. 그는 책사 장량과 함께 한신을 초왕으로 임명토록 설득하였다. 양왕 팽월과 초왕 한신이 병력을 이끌고 가세하지 않았다면 해하의 싸움에서 유방군이 승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통일 후 북방 세력인 흉노와의 갈등이 심해졌다. 한왕 신이 흉노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투항해버림에 따라 흉노의 묵특선우와 평성에서의 일전이 불가피해졌다. 용맹한 흉노의 공세에 밀려 유방 측이 포위되어 존망의 위기에 처하였다. 그는 묵특선우의 왕후 연지에게 뇌물을 써서 유방을 사지에서 구하였다. 고조 사후 16년간 천하는 여태후의 세상이었다. 그는 좌승상으로 임명되었다. 여후의 독재에 가타부타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날마다 술이나 마시며 권력에 관심이 없는 듯 처신하였다. 여후는 사사건건 직언하는 왕릉을 내치고 심이기를 재상으로 발탁하였다. 그는 여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여후가 죽자 태위 주발과 짜고 일시에 여씨 세력을 주살하고 유씨 왕조를 부활하였다. 후덕하다고 평가 받은 유방의 아들 유항을 새 황제로 옹립하였다. 그가 23년간 천하를 잘 다스린 문제다. 궁중 내 왕위계승을 둘러싼 소란은 있었지만 천하의 정세와 민생은 안정되었다. 수십 년간의 안정기가 도래하였다. 그의 재상관은 너무도 유명하다. 문제는 취임 후 우승상인 주발에게 재판과 국가재정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재판은 일 년에 몇 번 개최되는가" "국가의 수입과 지출은 연간 얼마나 되는가" 질문에 답하지 못한 주발은 땀으로 등을 적시면서 사죄하였다. 황제는 좌승상 진평에게 묻자 그는 "재판에 관한 일은 정위가, 국고에 관한 일은 치속내사가 가장 잘 압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면 재상은 무엇을 담당하는가"라는 하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재상은 위로는 천하를 보좌하며 음양을 다스려 사시사철을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는 만물이 제때에 성장토록 한다.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와 제후를 다스리고 안으로는 백성을 친밀하게 복종시키고, 관리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토록 한다" 재상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명답이다. 그는 문제 2년 세상을 떠났고 헌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생전에 "나는 기묘한 계책을 너무 많이 썼는데 이는 도가에서 금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마천은 사기 진평열전에서 "진평은 마지막에 고조의 막사에 몸을 의탁하여 항상 계책을 짜내서 나라의 환란을 구했다. 여후의 시대는 바야흐로 다사다난했다. 진평은 한 나라의 종묘를 편안케 하고 명예롭게 생애를 마쳐 어진 재상으로 찬양받았다"고 하였다. 진실로 지혜로운 재상이 아닐 수 없다.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