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12일 오전 울산의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이 학교 교장이 수백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108배를 했다. 108배는 108가지의 번뇌를 없애기 위한 108참회의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속죄를 위해, 혹은 억울함을 알리고자, 운동차원에서 108배가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A교장의 108배는 속죄의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 학교는 소속 교사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을 위해 동료교사와 함께 성적을 조작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해당교사와 그 교사를 도운 다른 교사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자녀는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 부모의 빗나간 자식사랑은 성적조작이라는 범죄행위로 이어졌고 자녀나 해당학교 학생과 교직원, 지역, 사회 전체로 파장이 확산됐다. 학교는 지식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지식인만 키우는 곳이 아니다. 지(知)ㆍ정(情)ㆍ의(意)를 모두 갖춘 전인(全人)을 키우는 곳이다. 최소한 양심과 상식에 따라 우리 사회를 살아가고 그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양심과 상식에 더해 법과 질서의 중요성도 배운다. 조작은 양심과 상식 기준을 벗어나고 법과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다. 그런데 최근 초중고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의 조작이 자행되고 있다. 조작은 대체로 '조작공모-조작행위-적발-징계-당국 조사-재발방지대책-또 다른 조작공모'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유형도 다양하다. 초중고의 경우라면 영훈 국제중처럼 입학을 위한 서류와 성적조작, 재학과 졸업 후의 학생기록부와 성적조작이다. 여기에는 학부모와 교사, 학생 모두가 연루된다. 보다 나은 학교를 가기 위한 목적이다. 대학은 학교나 교직원, 학생의 명예와 재정을 위한 조작이 많다. 성적조작, 취업률 조작, 충원율 조작, 연구실적의 부풀리기와 연구비, 학비 빼돌리기 등이다. 최근 경찰에 적발된 경남의 한 전문대학은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 재학생 충원율을 조작하고 신입생을 인기학과에 합격한 것처럼 속여 다른 학과에 입학시켰다. 교육부의 대학 지원 프로그램인 '교육 역량 강화사업'에 선정되려고 2010년부터 2년간 휴학하거나 자퇴한 학생 38명을 재학 중인 것처럼 재학생 충원율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학생 충원율은 취업률 등 대학을 평가하는 8개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조작 덕에 이 대학은 2011년부터 2년 연속 우수 대학으로 선정돼 정부 보조금 20억5000만원을 받았다.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대학들 가운데 적지 않은 곳이 성적을 세탁한 '취업용 성적증명서'를 발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36개 대학(일반대 160곳, 전문대 76곳) 가운데 70개 대학은 내부용과 외부용으로 성적증명서를 이중으로 발급했다. 51개 대학은 F학점을 삭제한 성적증명서를 만들었다. 명문대라는 곳들도 성적세탁, 학점세탁을 해줬다.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체에서 대학을 평가할 때 삼는 중요한 지표가 취업률이다. 취업률을 높이려면 최소한 서류심사의 주요 평가항목인 성적증명서에서 이득을 얻을지언정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게 대학당국의 판단이다. 결국은 취업을 위해 공문서, 사문서를 위조한 것이나 다름없다.대학에서는 재학생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성적을 조작하기도 한다. 한국장학재단이 전국 336개 대학 중 110곳을 대상으로 국가장학금 지급실태를 조사해보니 42개 대학에서 성적부풀리기가 있었다고 한다. 조사대상이 늘어나면 조작 건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조작이 횡행하는 데에는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유은혜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 8월까지 시도교육청이 감사후에 사립학교에 징계를 요구한 총 건수는 459건이었다. 이중 성적 관련 징계(생활기록부 조작 관련 포함) 요구는 134건이었고 생활기록부 관련 사안이 많았다. 그러나 파면, 해임은 없었다. 경고나 주의가 58건으로 가장 많았다. 조작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에서의 철저한 사전예방노력과 당국의 관리감독강화, 처벌강화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과 질서를 아무리 강화한들 양심과 상식의 기준이 높아지지 않고서 학교현장에서의 조작을 멈추기는 어렵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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