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복지시대]'행복한 미술 파티, 할머니들의 낮달 여행'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우리나라는 빈부 격차, 노동시장의 불안, 노령화 등으로 복지 이행이 더욱 절실해졌다. 실업, 사회 양극화, 인간 소외, 가족 해체 등 사회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복지 정책은 사회복지와 문화복지를 양 축으로 구현돼야 한다. 그러나 복지의 불균형으로 인해 정신적, 문화적 욕구 충족이 조화되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특히 문화복지에 쓰여지는 돈은 버려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문화 복지는 국민 행복과 고용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용한 정책이다. 문화복지가 이뤄지는 현장에서부터 정책 운영의 문제점, 해법을 살펴 본다.<편집자 주> 최근 장마가 몰려올 듯 흐린 날씨속에 할머니 40여명의 아주 특별한 소풍이 진행됐다. 경기 안성시 미양면 대안미술 공간 '소나무'를 찾은 할머니들의 옷차림은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어느 때보다도 화사했다. 이들은 경기 용인에 소재한 '신갈 야학교' 학생들이다. 젊어서 가난 때문에 자녀를 키우고 일하느라 배우지 못한 아픔을 지닌 분들이다. 평소 야학에서 늦은 학구열을 불태우는 중이다. 대부분 60, 70대다. 할머니들의 야외 나들이는 경기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행복 미술파티 '낮달문화소풍'이라는 문화체험으로 이뤄졌다. 오전 10시께 미술관에 도착한 할머니들은 오랫만에 전원을 찾아 모두 들뜬 표정으로 삼삼오오 잔디밭이나 벤치 등에 앉아 어린 소녀들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신갈 야학교 학생인 할머니들이 경기 안성시 미양면에 소재한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미술수업을 받고 있다.

이윽고 최예문 관장의 인솔로 미술 수업이 시작되자 눈빛이 금새 초롱초롱 빛났다. 첫수업은 작가와의 만남, '자연 그리기 수업'. 전원길 화백이 자원봉사로 나섰다. 전 화백은 소녀들의 눈높에 맞춰 '미술의 즐거움', 자연을 그리는 방법,주변에 널려 있는 나뭇가지나 풀 등을 도로잉하는 작업과 색칠 요령을 일러줬다. 할머니들은 뽕잎, 나팔꽃 등을 가져다 종이 위에 밑그림으로 그리고 색칠했다. 어린 학생마냥 미술 작업에 푹 빠진 표정이다. 일찍 작업을 마친 송호순 할머니(72)는 "난생 처음 그림을 그려 본다"며 "그림을 그리고 나니 신기하게 마음이 차분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미술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자원 봉사를 나온 안성시 문예교사 다섯명도 할머니들 틈에 섞여 그림 그리기를 도왔다.안성시 문예교사는 시청에서 문예예술강좌 45시간을 수료하고 시험을 통과한 사람로 지역내 문예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손오복 교사(47)는 3급 교사 자격을 획득하고 첫 자원봉사를 실시한다며 즐거워 했다. 손 교사는 "할머니들이 너무 열심히 한다. 나도 할머니들과 함께 미술교육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각자 드로잉과 색칠하기를 마치고, 그림을 액자에 넣어 미술관 갤러리 한 벽면에 나란히 전시를 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화가라도 된 양 으쓱한 표정이다. 이윽고 그림 품평회와 더불어 시낭송회가 펼쳐 졌다. 최 관장이 조순흥 할머니에게 윤석중의 동시를 건네자 돋보기를 찾느라 가방을 뒤질 땐 할머니들 모두 자지러진다. 할머니들의 시낭송은 일품이었다.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운율에 맞춰 시를 낭송할 때는 연륜이 물씬하다. 최관장이 "미술을 그려보니 어땠어요 ?" 묻자 유순자 할머니는 "오늘 참 내 칠십평생에 가장 행복한 날이우~"라고 진솔하게 답해 좌중을 웃겼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할머니들은 즉석에서 파전과 도토리 묵무침을 만들어 비빕밥과 함께 점심을 즐겼다. 오후가 돼서 '나도 예술가' 시간에는 티셔츠와 스카프에 천연염색하기, 색종이 염색가방에 그림 그리기 등의 수업이 이어졌다. 이같이 문화바우처사업은 사회, 경제적 어려움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하지 못 하는 소외계층에 공연, 전시, 답사,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국가가 지원한다.

신갈야학교 할머니들의 미술수업 자원봉사에 나선 공간소나무 최예문대표(왼쪽 네번째)와 전원길 화백(왼쪽 세번째) 그리고 안성시 문예교사들.

이번 '낮달문화소풍'도 바우처 활동이다. 김정연 경기문화재단 대리는 "문화 카드를 발급받지 못 하는 분들을 위해 기획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행복한 미술 파티는 올 연말까지 20여회에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예술인과 예술공간, 예술체험 등을 통해 상호 교류가 늘어날 경우 문화시민사회, 지역문화예술, 문화복지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규성 기자 peac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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