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돼지 파동, 돈육선물로 막자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코위츠는 달걀이 한꺼번에 깨져 큰 손해를 보는 것을 막으려면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위험의 분산'이 바로 불확실성 시대에 살아가는 경제의 지혜다. 농산물은 대표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상품이다. 농산품은 많아도 탈, 적어도 탈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극심한 가격파동에 시달리는 것이 돼지고기다. 축산 농가가 의욕적으로 사육 두수를 늘리면 공급과잉으로 돼지고기 값은 폭락한다. 가격이 폭락하면 농가들은 사육 두수를 줄이게 되고, 이에 따라 공급이 부족해지면 다시 가격은 폭등한다.  이런 가격상승에 고무된 농가가 돼지 사육 두수를 늘리면 또다시 가격은 폭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구제역, 돼지콜레라 등 가축전염병까지 번지게 되면 가격 변동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친다. 이 바람에 수많은 돼지 사육 농가들은 도산 위기에 몰린다. 이런 돼지 파동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은 없을까.  과거 정부는 돼지 값이 폭락하면 수매를 확대해 비축을 늘리고, 가격이 폭등하면 비축 물량을 푸는 방법으로 축산 농가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 기능을 저해하기 때문에 현재의 국제무역질서하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 대신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돈육선물 시장을 활용한다. 돈육선물은 달걀이 깨질 위험을 나누어 담는 바구니 역할을 하는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이다. 그럼 축산 농가는 돼지 파동을 관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돼지 사육 농가의 절반가량은 육가공업체들과 미리 물량판매 계약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일정 물량에 대한 판로를 보장받을 수는 있으나 가격폭락에 대한 위험은 그대로 남게 된다. 따라서 절반 정도의 물량에 대해 돈육선물로 가격변동에 대한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컨대 축산 농가는 새끼 돼지를 들여올 때 육가공업체와 물량판매 계약을 맺고 동시에 같은 규모로 돈육선물을 구입한다면, 축산 농가가 직면하는 위험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또 육가공업체들 역시 돈육선물 시장을 이용한다면 가격변동에 대한 위험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 이때 증권사가 보험증서처럼 간편하게 증권화된 상품을 개발, 판매한다면 선물상품에 익숙하지 않은 축산 농가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돈육선물 시장에 공공기금이 참여한다면 돼지가격에 대한 위험은 더욱 분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돼지관련 위험을 서로 다른 4개의 바구니인 축산 농가, 육가공업체, 투자자, 공공기금으로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축산 농가들에 생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공기금이 시장 개설 초기단계에 적극 참여해 돈육 관계자들이 이 상품을 통해 위험을 관리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공공기금이 돼지 사육기간과 일치하는 6개월물 돈육선물을 구입한다면 축산 농가에 6개월 후의 돼지 시장 가격이 얼마가 될지를 예시해 주는 역할도 제공할 수 있다. 사육 농가는 이 선물시장 가격의 움직임을 참고한다면 어떤 규모로 돼지를 키울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이번 달부터 축산 농가들이 쉽게 돈육선물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시장조성자를 기존 1개사에서 3개사로 늘려 유동성을 확대했다. 종전 500만원이었던 기본예탁금을 50만원으로 낮추고, 거래증거금은 기존 14%에서 12%로, 위탁증거금은 21%에서 18%로 내려 시장참여자들의 부담을 완화했다. 아무쪼록 양돈 농가들이 이 시장을 잘 활용해 위험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 돼지 파동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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