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신경림의 '외로울 때'

외로울 때는/협궤열차를 생각한다/해안선을 따라 삐걱이는 안개 속/차창을 때리는 찬 눈발을/눈발에 묻어오는 갯비린내를답답할 때는 늙은 역장을 생각한다/발차신호의 기를 흔드는/깊은 주름살/얼굴에 고인 고단한 삶을/산다는 일이 때로 고되고/떳떳하게 산다는 일이/더욱 힘겨울 때괴로울 때는/여인네들을 생각한다/아직도 살아서 뛰는/광주리 속의 물고기 같은/장바닥 여인네들의 새벽 싸움질을/밀려가는 썰물도 잡고 안 놓을/그 억센 여인네들의 손아귀를/외로울 때는 ■ 서울에 사는 일은, 서쪽으로 머리 돌려 자기만 해도 파도소리를 듣는 일이다. 인천에 대한 심정적인 거리는 그랬다. 친구들과 인사동에서 술 마시다 새벽에 기어이 바다를 보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해풍이 코끝으로 몰아주는 소금냄새의 힘으로 슬픔을 염장하던 날들이 있었다. 신경림도 그랬는지, 협궤열차에 대한 시들이 몇 편 있다. 신경림의 소묘법은 매력적이다. 간소한 붓질 몇 번으로 수인선 협궤열차를 그림같이 그려낸다. 아주 이른 새벽이다. 안개 가득한 해안을 삐걱이며 갈 때 차창을 때리는 눈. 차가 멈춰섰을 때 기를 흔드는 늙은 역장의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바닥 여인네들의 새벽 싸움질. 그 억센 손아귀 속에 펄펄 살아있는 생의 힘. 사라져가는 것, 살아남아 있는 것, 살아내야 하는 것. 그것들을 떠올리며 시인은 힘을 얻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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