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7년짜리 장기 예산안 마련 난항 거듭

순회 의장국 키프로스 500억유로 절감안에 추가 감축 요구 봇물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유럽연합(EU)이 2014~2020년 사용할 장기 예산안 마련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1조유로(약 1410조원) 규모의 예산안과 관련해 반발이 거세지자 EU 순회 의장국 키프로스가 500억유로 이상 줄여 새로운 예산안을 마련했다.그러나 EU 회원국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예산 삭감안을 내놓은 키프로스 정부에 대해 맹비난하며 추가 삭감을 요구하고 나섰다.3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EU 순회 의장국인 키프로스는 29일 새로운 예산안 내용을 각국 정부에 전달했다. 키르포스 정부는 새로 제안한 예산안에서 가난한 동유럽의 EU 회원국들에 지원하는 인프라 건설 지출을 크게 줄였고 농업 보조금 역시 삭감했다. 하지만 정부 부채를 줄여야 하는 서유럽의 부국들은 동유럽의 빈국들에 대한 지원 규모를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웨덴의 버기타 올손 EU 담당 장관은 "긴축해야 할 판에 예산이 증액돼선 안 된다"며 "최대 3~4배 추가 삭감해야 한다"고 발끈했다. 그는 "단 500억유로 삭감으로는 예산안 타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과 독일 측도 1000억~2000억유로 규모의 예산 삭감을 요구했다.반면 EU 펀드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폴란드는 키프로스가 감축 규모 확대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키프로스를 비난했다. 도날드 터스크 폴란드 총리는 영국을 겨냥해 예산안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물가에 따라 매년 2%씩 늘어나는 현재 예산 정책이 강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EU가 내년 말까지 7년짜리 장기 예산안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2013년 예산안에 따른 기존 자금 집행 계획이 그대로 유지된다. 앞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실질 물가 상승률 기준으로 EU 기여금 규모가 동결되지 않을 경우 EU 예산안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터스크 총리는 "타협하는 것이 영국에도 더 부담을 줄이는 것이라며 영국을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폴란드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고 다른 회원국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의 대변인은 예산안 합의에 이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갖고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합의를 원하지만 우리가 수용할 수 있고 영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서유럽 국가들 내에서도 농업 보조금 삭감 규모를 두고 확연한 입장 차이가 확인됐다.현재 EU 예산은 농업 보조금과 인프라 건설에 가장 많은 비용이 투자된다. 예산의 40%가 농업 보조금에, 35%가 인프라 건설에 투자된다.이번에 키프로스 정부는 동유럽 국가들에 주로 지원되는 인프라 건설 예산을 125억유로 줄였다. 반면 농업 보조금 삭감 규모는 50억유로에 불과하다. 농업 보조금으로 사용될 예산 규모는 7년간 2770억유로가 넘는다.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농업 보조금 혜택을 가장 크게 받는 국가들이다. 오랫동안 농업 보조금 비중 축소를 요구해왔던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등은 키프로스의 제안은 균형감을 상실했다고 비난했다. 농업 보조금 삭감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올손은 "예산 삭감에서 농업 정책이 보호받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EU 공동농업정책(CAP·Common Agricultural Policy)은 EU 총생산(GDP)의 1.5%, 고용의 5% 비중 밖에 차지하지 않는데 예산의 40%가 배정돼 있다"며 불합리성을 지적했다.환급금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헬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는 지난달 EU 예산 기여분을 10억유로 줄여주지 않으면 EU 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덴마크 의회 연설에서 "덴마크는 EU 부국들의 환급금을 위해 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며 "이는 우리 또한 리베이트를 받아야 하는 이유이며 덴마크도 환급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익명을 요구한 이탈리아 외교 관계자도 우리도 환급금을 요구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집중포화를 맞은 키프로스 정부는 "이 문제는 우리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며 "향후 예산안 합의는 회원국들에 달려 있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이번에 제시된 삭감안은 시작일 뿐이라며 최종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삭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기 예산안 문제는 31일 있을 EU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핵심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장관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내달 22~23일 EU 정상회의에서 예산 문제가 다뤄질 예정이다.박병희 기자 nu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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