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현장 르포]태풍보다 무서운 '불경기'

태풍보다 불경기 여파에 상인들 울상[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이현주 기자] "태풍이고 뭐고, 경기가 안좋아서 손님이 없다."태풍 산바가 한반도를 강타한 다음날인 18일 오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의 말이다.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인 가락시장. 전날 전국을 휩쓴 '태풍' 때문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상인들은 하나같이 '경기'탓을 하며 울상을 지었다.이날 수산물 시장에서 조기, 고등어 등 선어를 판매하는 상인은 "태풍은 둘째치고, 경기 때문인지 작년에 절반도 손님이 안 오는 것 같다"며 "제사상에 올리는 생선들도 줄여서 산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5~6마리씩 소쿠리에 담겨 있으면 그대로 사갔는데 올해는 그 중에서도 1~2마리만 골라서 사가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18일 오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불경기 여파로 추석 대목임에도 한산한 모습이다.

또 수산물 코너의 또 다른 상인은 "태풍 피해라고 하면 태풍 당일 손님이 없었던 정도"라며 "하루 배가 못 뜬다고 전체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귀띔했다.추석을 앞두고 선물용 굴비 포장에 여념없는 한 상인도 답답함을 표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굴비를 포장하고 있던 최모씨는 "작년에도 경기가 안좋아서 힘들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더 안 좋다"며 "그나마 가격이 작년보다는 조금 내려서 기대했는데 가격 내린 것 감안하면 매출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18일 오후 가락시작 청과물 도매 시장 내부. 추석 때 판매될 예정인 사과와 배, 포도 등 과일이 쌓여있다.

과일 도매상도 태풍의 영향이 심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충북 조치원에서 1t트럭 가득 배를 싣고 온 정기수(48)씨는 "추석이 다가와서 배를 거의 대부분 수확한 상황이었다"며 "태풍이 불어 아직 수확시기가 남은 배들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뉴스에 나오는 것 만큼 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시장에서 과일 도매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 한 관계자는 "농가에서 어느 정도 관리를 해서 그런지 태풍 영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며 "평소 입하된 물량과 큰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과일 도매가 이뤄지는 시장 안쪽에는 그의 말처럼 사과와 배, 포도 등의 과일들이 수백 상자씩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도매 시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과일 소매상들은 경기 여파를 체감하고 있었다. 가락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작년에 비해 사과나 배 같은 과일값은 작년보다 많이 내렸는데 찾는 손님은 그리 늘지 않았다"며 한숨지었다.

▲18일 오후 서울 가락동 농산물 시장. 불경기 여파로 추석 대목임에도 한산한 모습이다.

채소를 판매하는 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산에서 재배된 배추와 열무를 파는 가락시장 상인 김병수(가명)씨는 "가락시장 채소는 경기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많아서 이번 태풍에는 피해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근, 연근 등 근채류를 주로 파는 상인도 태풍 영향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강원도 고냉지 배추를 파는 상인은 "배추 값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고냉지 배추와 무 값도 올랐다. 하지만 이번 태풍의 영향은 아니다"라며 "불황이라 그런지 배추 값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배추 값을 물어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누구도 배추를 선뜻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의 뒤에는 세 개씩 묶은 배추 묶음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강원도 평창 운두령에서 자란 오이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오이 크기가 작아서 세 개 1000원에 팔고 있다"면서 "태풍과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이날 가락시장을 찾은 박상철(68)씨는 "마트보다 싸다고 생각해서 시장에 자주 오는데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상인들이 태풍 때문에 앞으로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을 해 추석 땐 진짜 값이 크게 오를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이윤재 기자 gal-run@이현주 기자 ecolhj@<ⓒ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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