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미국의 집단따돌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불리(Bully)'의 리 허쉬(40) 감독은 "미국에서는 주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다루는 정책이 달라 학교폭력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제9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참석차 내한한 그는 2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불리' 상영회에서 "매년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 1300만 명의 청소년들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state)마다 학교폭력 대책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학교별 대응방침도 천차만별이라는 지적이다.
2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학교폭력다큐멘터리 영화 '불리' 특별 상영회에 참석한 리 허쉬 감독
이날 상영된 '불리'는 미국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5명의 아이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1년여에 걸쳐 취재한 다큐멘터리로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할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 10만 명의 학생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고, 이 영화를 계기로 반(反) 왕따 캠페인이 자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허쉬 감독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여전히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는 학교들도 있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사회에서 '학교폭력이 이대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이제는 학교폭력 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티핑 포인트란 어떤 아이디어가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번지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9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개막작으로 선정된 '불리(Bully)'
이 영화는 철저히 피해학생과 그 가족들의 관점을 유지하며 관객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다. 자폐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수시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는 알렉스(12·아이오와주), 남들과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와 사회에서 배제된 켈비(16·조지아 주), 주변 친구들의 왕따를 견디다 못해 스쿨버스에서 친구들에게 엄마의 총을 겨눈 저메야(14·미시시피주), 그리고 집단괴롭힘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타일러 롱(17)과 타이 스몰리(12)까지 이 영화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왕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낸다. 한 발 나아가 영화는 현상의 심각함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변화의 움직임까지 포착해낸다. 영화 속 피해자 가족들은 '집단따돌림'을 방관하는 학교와 사회에 대해 침묵하는 대신 분노로 대응한다. 정부와 학교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평범한 시민들을 모으며 '침묵하는 아이들을 지키자(stand for the slient)'라는 슬로건을 내건 사회운동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허쉬 감독은 "그동안 두려움과 슬픔에 잠겨 침묵하던 피해자들이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영화가 문제 해결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학교 문화를 바꾸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도록 용기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7000여명이 불리를 동시에 관람하고 있는 모습
미국에서는 이 영화와 연계된 '불리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허쉬 감독은 "교사협회뿐만 아니라 교육부, 백악관과도 함께 협력하고 있다"며 "학생 100만 명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 영화 관람 후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불리 가이드'라는 매뉴얼도 발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변화를 일으켰으면 좋겠다"며 "결과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영화제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피해자 학부모로서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위로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전학을 가야하는 분위기라 그동안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너무 힘들었다"며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변화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메시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앞으로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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