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공동대표
[아시아경제 김승미 기자]통합진보당 유시민 전 공동대표가 통합진보당 내 핫 이슈인 '아메리카노' 논쟁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유 전 대표는 20일 "너무 심각한 논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런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좀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이날 당 게시판에 "커피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누가 부르주아적 취향'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며 "한번 뿐인 인생인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요?"라며 이같이 밝혔다.유 전 대표는 "그래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 이름이 그래서 그렇지 미국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싱거운 물커피"라고 말했다.그러면서도 유 전 공동대표는 "백승우님의 문제제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이나 고위 당직을 맡은 당원들은 관료주의나 권위주의에 젖지 않도록 겸손하게 처신하고 또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당의 공동대표를 하는 동안 제가 혹시 당직자들을 무시하거나 쓸데없는 의전 때문에 당에 경제적 부담을 지운 일이 없는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또 이어 그는 "커피 때문에 불편한 느낌을 받은 당직자가 혹시 있었다면 미안하다"며 "그러나 제 수행비서 말고 다른 당직자 누구에게도 '커피심부름'을 시킨 적 없다"고 말했다. 수행비서에 대해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신뢰하고 존중한다"며 "10년동안 단 한번도 그 사람에게 언성을 높여 말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전문이다.당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 공동대표 유시민 당원입니다. 커피 문제로 논란이 많은 것 같아서 몇 말씀 드립니다. 저는 백승우님의 문제제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공직이나 고위 당직을 맡은 당원들은 관료주의나 권위주의에 젖지 않도록 겸손하게 처신하고 또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당의 공동대표를 하는 동안 제가 혹시 당직자들을 무시하거나 쓸데없는 의전 때문에 당에 경제적 부담을 지운 일이 없는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래 사람은 불완전하지요. 좋은 원칙을 가지고 잘 지키려고 노력해도 때로 실수를 합니다. 실수하면 성찰하고 고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공동대표단 회의에서 제가 아메리카노 마시는 장면을 뉴스에서는 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기자들의 취재를 허용하는 공개회의가 끝난 다음에, 또는 비공개 회의에서 마셨으니까요. 대표단 회의는 대부분 국회 본청 2층 우리당 의정지원단에서 열렸습니다. 의정지원단에는 커피를 내리는 커피머신이 있습니다. 당직자들이 그 커피를 가져다주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커피포트에 내려놓은 커피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자와 당직자들도 마시니까요. 또 회의가 길어질 경우 도중에 정신을 좀 차리기 위해서(저나 심상정 대표는 그걸 때 커피가 땡깁니다.^^) 커피를 찾게 되는데, 회의하다 말고 배석한 당직자더러 새로 커피를 내리라고 부탁하긴 좀 그렇습니다. 그럴 때 제가 수행비서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커피 좀 부탁한다." 이렇게요. 그러면 제 비서가 의정지원단에서 계단을 한층 올라가면 있는 의원식당 앞 실내 테이크아웃 코너에 가서 보통 넉 잔 정도 사서 가지고 옵니다. 거기 아메리카노 가격이 아마 2천원일 겁니다. 혼자 넉 잔을 들고 오기 위해서 종이로 만든 홀더에 담아오지요. 사실, 심대표가 커피를 찾고 제가 문자를 보낸 때가 더 많았을 겁니다. 꼭 아메리카노만 마신 건 아닙니다. 카라멜 마끼아또나 카푸치노를 마시는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저는 '별다방'에서 파는 '프라푸치노 에스프레소 칩'을 사실 좋아하는데 그걸 사러 밖에까지 나가게 하는 건 좀 과하지요.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의가 잘 진행되지 않아 머리가 아플 때는 좀 단 커피를 먹는 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정희대표나 조준호 대표도 원하실 때는 함께 한 잔씩 나누었답니다. 커피를 사다준 제 비서는 2003년 4월 제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부터 10년째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웃에 살지요. 함께 낚시도 가고, 같이 밥도 먹고, 함께 담배도 피우고, 당구도 같이 치고, 아이들끼리 자주 어울려 놀고, 가끔은 두 집 가족이 함께 외식도 하고(밥값은 당근 제가 내지요.^^), 뭐 그러는 사이입니다. 제가 과천에 근무할 때도 수행을 했습니다. 운전만 해주는 게 아니라 전화도 대신 받고 일정도 조정해주고 기자분들 연락 오면 보고해 주고, 여하튼 제 정치활동과 사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입니다. 대표단 회의를 할 때는 혹시 회의 도중에 제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까 싶어서 늘 근처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말을 하지 않으면 아메리카노를 사다 줍니다. 제가 찬 것을 마시다가 배탈이 난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가져다줄 때도 제게는 따뜻한 것을 가져다 줍니다. 백승우님이 비서실장 이야기를 한 것은 아마도 제 수행비서가 회의실에 들어오기가 좀 그래서 문자로 비서실장에게 커피 왔다고 보고를 하면 비서실장이 나가서 받아오곤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카드로 결재화는 공동대표의 활동비는 한 달에 100만원이 한도였습니다. 지방출장 교통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액수였습니다. 커피를 사거나 하는 소소한 지출은 제가 따로 수행비용을 조금 주어서 해결했습니다. 당대표가 뭐 대단한 자리는 아닙니다. 저도 보통 시민들처럼 생활비와 아이 등록금 걱정하고 틈틈이 시간 내서 책을 쓰고, 가끔 강연이나 방송토론 나가서 강연료와 출연료 받으면 '비자금'으로 활용하고, 뭐 그렇게 삽니다. 예전에 쓴 책 인세가 조금씩은 들어오니까 몇 달 정도 공동대표 일하는 동안 돈벌이 못하는 건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지요. 당직을 사퇴한 후에는 주로 작업실(출판사에서 방을 하나 임시로 내준 덕에!)에서 글 쓰고, 저녁에는 혁신파 모임에 조용히 참석하고, 그렇게 근신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덜 바쁠 때 벌이가 되는 일을 좀 해야 또 바빠지더라도 견딜 수 있고 선거 때 선인세 받아 쓴 걸 갚을 수도 있지요.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즘은 당이 너무 어려워져서 마음이 심란한 탓에 글도 잘 써지지 않는군요. 그래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거 사실 이름이 그래서 그렇지 미국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싱거운 물커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일입니다. 저는 아주 가끔씩만 합니다. 저는 아내보다 좀 더 싱겁게 내려서 지청구를 듣곤 하지요. 아침에 커피향이 주방과 거실을 채울 때,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은 향이 더 좋습니다. 원두는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는 곳에서 온라인 구매를 합니다. 손잡이를 돌려서 원두를 가는 조그만 통(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요.)은 3만5천원 짜리인데 역시 온라인 구매를 한 것입니다. 누가 '부르주아적 취향'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한 논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좀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지난 10여 년, 정치인으로서 정당인으로서 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같은 길을 택한 분들은 훌륭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데도 국회의원이 되지 못해 국민들께 봉사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고마우면서도 너무나 미안합니다. 꼭 무엇이 되겠다고 이 길을 나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직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저의 실패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성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창조적 흥분상태'라는 게오르그 짐멜이 만들었고 막스 베버가 널리 알린 말이 있습니다. 베버는 1920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초기에 사회주의혁명가와 진보지식인들을 향해 이것을 경계하라고 충고했지요. 아무 가치있는 것도 낳을 수 없는 '비창조적 흥분상태' 또는 '불모의 흥분상태'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고 스스로 세운 행동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하라고 했던 임마누엘 칸트의 충고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커피 때문에 불편한 느낌을 받은 당직자가 백승우님 말고도 더 계실지 몰라서 이 기회에 말씀드립니다. 혹시 그랬다면 미안합니다. 일부러 또는 알면서도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수행비서 말고 다른 당직자 누구에게도 '커피심부름'을 시킨 적이 없습니다. 저는 '커피심부름'을 했던 제 수행비서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신뢰하고 존중합니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사람에게 언성을 높여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본의와는 다르게, 타인에게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친 적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살겠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마지막 무더위와 폭우 잘 이겨내시기를 기원합니다.김승미 기자 askm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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