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 “다음 욕망이 생겨날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div class="blockquote">데뷔 20년, 올해 나이 마흔. 살아온 시간의 반을 연기 생활로 보낸 장동건은 배우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고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아들의 아버지다. 그는 “내려놓고, 편안해지고 싶어서” SBS <신사의 품격>을 선택했고, 결국 맘보부터 소녀시대 춤까지 추게 됐다. TV 드라마로 돌아오기까지 12년간 옹골차게 단단했던 장동건은 정말 편안해진 걸까. 여전히 바르고 진중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지만 그는 “요즘은 많은 분이 서슴없이 사인과 사진 요청을 한다”며 즐거워하고, 여유롭고 큰 소리로 “하하하”하고 웃었다. 사람은 흐르고 변한다. 2012년 여름, <신사의 품격>을 끝낸 장동건은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을까.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도시멜로물과 한국형 첩보 액션을 하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신사의 품격>으로 그 소원을 이룬건가. 장동건: <신사의 품격>을 했으니 이제 한국형 첩보 액션이 남은 건데, 그건 정말 내 오래된 숙원 사업 중에 하나다. (웃음) 근데 요즘 그런 류의 작품이 너무 많이 나오긴 하더라. <h3>“도진과 이수가 담당한 단면은 연애의 유치함과 오글거림”</h3>
TV 드라마로는 12년 만이다. TV에 나온 본인 모습이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장동건: HD TV의 위력을 말로만 들었었는데, 이번에 아주 깜짝 놀랐다. (웃음) 사실 나는 12년 만의 드라마라는 의식을 많이 안 하고 시작했다. 그래도 영화의 스피드와 호흡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처음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그리고 소소한 연애의 모습을 표현하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역시 조금 부담이긴 했다. 물론 멜로드라마를 해봤지만, 로맨틱 코미디와는 또 많이 다르니까.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반, 설렘 반. 드라마 촬영 내내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 스타일이 복병이었을 것 같기도 했다.장동건: 많이 힘들었다. (웃음) 그거야말로 정말 어려웠다. 일상생활 속 나와는 거리가 멀고, 이전에 이런 역할을 해보지도 않았으니까. <신사의 품격>에 등장하는 커플들에게는 각각 연애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역할이 있는 것 같다. 태산과 세라, 정록과 민숙, 윤과 메아리 커플이 그리는 면면이 다 다르다. 도진과 이수가 담당한 단면은 연애의 유치함과 오글거림인 것 같다. 그저 내게 주어진 몫이라 생각했다. 오글거리지만 예쁘게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내가 연기 하면서 오글거리는 기분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웃음) 코미디 연기를 할 때 종종 대본보다 더 망가지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욕심이 났나. 장동건: 김도진은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좀 위험한 지점들이 있었다. 보편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지 않나. 남녀노소가 다 보는 TV 드라마의 특성상,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캐릭터였다.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인물 중 선을 넘나드는 유일한 캐릭터다. 그런 것들 때문에 코미디 부분에 있어서는 ‘더 망가져야 정감 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망가져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좀 의도적으로, 원래 쓰여 있는 것보다 많이 간 지점들이 있었다. 더 망가지고, 예쁘게 보이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신사의 품격>이 갖는 의미가 컸다는 건가. 장동건: 드라마 하던 중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뭐 얼굴에 주름도 많아지니까 ‘이야. 이거 좀 더 젊었을 때 로맨틱 코미디 하나 찍어 놓을 걸, 왜 안 했을까’라는 생각.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이니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20대와 30대 초반의 장동건은 지금처럼 내려놓지 못했을 거다. 그때그때 때에 맞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작품과의 인연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들도 있고. 나쁜 남자이면서도 그렇게 유들거리는 장동건이 새롭게 느껴졌다. 장동건: 나쁜 남자 캐릭터는 사실 정말 해보고 싶었다. 아직 공개는 안 됐지만, 이 작품 전에 <위험한 관계>라는 영화 촬영을 했는데, 그 영화가 딱 이 지점에 맞는 작품이다. 약간 유머도 있는 캐릭터고, 처음 초고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 만나 이야기하면서 “‘옴므파탈’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 그런 부분들이 도드라진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감독님과 많이 조율해 나가면서 촬영했다. 만약 영화가 먼저 소개됐다면 굉장히 신선해 보였을 텐데, <신사의 품격>에서 이미 꽤 진도가 나가서... (웃음) 드라마 다음에 영화를 선보이게 돼 신선함은 좀 덜할 수도 있겠다. “한 작품이 끝나면 결핍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차기작을 고르게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옴므파탈’에 대한 욕구는 <마이웨이>를 찍으면서 생긴 건가? 장동건: 보통 남자 배우들이 선호하는 캐릭터에는 보편적인 수순이 있는 것 같다. 20대 때는 약간 터프한 역할을 하고 싶어 하고, 그러다 악역이 또 하고 싶어질 때도 있고 그렇다. 예전에 드라마 <의가 형제> 할 때 나쁜 남자 비슷한 역할을 했었던 것 같은데, 중년이 돼서 나쁜 남자 연기를 하면 좀 더 원숙미 있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웃음) 그런 게 있어서 늘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위험한 관계>를 하면서 또 하나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대중적인 영화 말고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영화들. 섬세하고 작은 건데 배우가 연기에 있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들이 있다. 대부분 작가주의 영화들이 그렇다. 그런 것을 해보고 싶다. <위험한 관계>를 작업하면서 연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던데.장동건: 관심이야 늘 있었다. 현장에 있으면 옆에서 기웃거리면서 보게 되고, 물론 배우의 입장이지만 자연스럽게 ‘나라면 이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허진호 감독님 연출 스타일이 워낙 다 터놓고 배우랑 같이 상의하고, 배우가 납득하지 않는 것은 아예 진행을 안 하시는 스타일이다 보니 많이 배웠다. 그동안은 거기까지 내가 신경을 안 써도 됐는데, 감독님이 워낙 열어놓고 하시니까 내가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던 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아직은 관심이다. 엄두는 안 난다. <h3>“뭔가 나에게 또 새로운 게 나타났으면 좋겠다”</h3>
드라마를 다시 하기까지 지난 12년동안 무게감 있는 영화에 집중했다. 그 때는 관심사가 그런 작품에 있었던 건가. 장동건: 글쎄. 그때는 그런 큰 감정들을 연기하는 게 되게 좋았다. 그 당시에는 그런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정말 좋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까 또 반대급부로 일상적인 것, 작은 감정들을 재밌게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생기더라. 편안하고, 가벼워 보이는 것들. 그러면 앞으로는 이런 일상적인 톤의 작품들을 더 할 생각인가. 장동건: 이번 작품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다. (웃음) 편안함과 가벼움에 대한 갈증은 해소됐다. 다음에 꼭 무거운 걸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뭔가 나에게 또 새로운 게 나타났으면 좋겠다. <신사의 품격>도 그런 걸 하고 싶어 하던 찰나 내 앞에 나타났던 거였다. 이런 게 배우의 운명인가 싶다. 앞으로는 또 어떤 걸 하게 될까 기대된다. 이번 작품으로 내가 상상할 수 없던 나의 모습들을 많이 봤다. 나라는 재료를 사용해서 나도 예상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끌어낼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할 수 없는 역할들이 많아지겠지만, 그만큼 또 그래서 할 수 있는 역할들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드라마 같은 경우 40대 남자들의 로맨틱 코미디는 만들 생각도 안 하는 게 보통인데 이를 기획해서 하려 했던 점이 신선했고, 그 자체로 나에겐 의미 있는 기회였다. 그렇다면 40대 배우 장동건은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걸까.장동건: 30대까지는 무엇을 향해 걸어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40대가 되니 무엇을 향해 걸어간다기보다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도 이 세상에는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 때로는 거기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그런 시기인 것 같다. 예전에 난 <친구>가 800만을 넘었을 당시에도 진심으로 즐기지 못했다. 당신같은 톱스타가 흥행을 즐기지 못했다니 의외다. 무엇이 그렇게 불편했나.장동건: 말하자면, 난 사실 늘 고민이었다. 어려서부터 배우를 꿈꾼 게 아니어서 처음엔 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이 있었다. 그걸 극복하려 학교에 갔다. 영화에 도전하면서부터는 자꾸 흥행에 실패해서 고민이 많았다. 근데 또 “이렇게 영화를 많이 말아먹는데, 그래도 어떻게 계속 연기를 하게 되는구나” 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고민을 초월하게 됐던 것 같다. 장동건이라는 사람은 20년 동안 좌절이 없었던 것 같겠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나도 굉장히 굴곡이 많았다. 조기 종영됐던 드라마도 있었고, 연달아서 한 다섯 작품이 마구 망가졌던 적도 있다. 약간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또 아무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었다. 늘 그랬다. 항상 다음이 고민이었다. 그렇지만 극복하려고 갖은 애를 쓰기보다는 그 고민 자체를 자연스럽게 두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감정적으로 게을러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면 좋은 생각들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제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장동건: 재충전의 시간. 몸과 마음이 쉬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다음 욕망이 생겨나는 시기가 필요하다. 배우가 작품을 잘 만나서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때인 것 같다. 그런 게 생겨나는 기간이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아이가 말도 하기 시작하고, 집중적으로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좀 보내고 싶다. 지금은 좀 의도적으로 즐기려 하고 있다. 순간의 성공에 대해 내 스스로 기뻐하고 그럴 필요가 있는 것 같다.<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이경진 인턴기자 romm@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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