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내달 ‘퇴직급여 보장법’시행 앞두고 감독 강화
오는 7월26일 시행예정인 개정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맞춰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감독방향을 내놓았다. 그 주요 내용은 개인형 퇴직연금 제도(IRP)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퇴직금 중간 정산, 제한, 퇴직연금 모집인 제도 도입 등이다. 이와 관련, 그동안 금융위와 노동부가 협의를 지속해오던 ‘근퇴법시행령’ 개정안은 6월 중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노후의 중요한 소득원이 될 퇴직연금이 어떤 근거에 의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살펴본다.베이비부머들의 본격적인 은퇴는 이제 우리 사회에 ‘노후’라는 걱정거리를 구체적으로 던지고 있다. 그동안 고도성장과 산업화라는 명분으로 소홀했던 은퇴 이후의 삶이 현실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고령화·저출산의 급속한 진행으로 은퇴 후의 생활은 점차 장기화돼 가는 반면, 노년층을 부양할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어 노후생활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준비가 절실하다. 통계청의 장래 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지난 2000년 7.2%에 달해 이미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으며, 향후 2018년에는 이 비율이 14.3%로 올라가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2026년에는 20.8%가 되어 ‘초(超)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이런 변화 속에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장치는 대개 3가지를 꼽는다. 흔히 이야기하는 ‘3층 보장’이 그것인데 1차로 국민연금과 2차 퇴직연금, 3차 개인연금으로 은퇴 이후를 준비하자는 얘기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은 국민건강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고용보험과 함께 4대 사회보험의 한 종류로 최저생계보장 등을 위해 강제 가입하는 제도인 반면 퇴직연금은 이와 별도로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하기 위해 노사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가입하는 제도다. 3차 보장인 개인연금을 제외하고 사회적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양대 축인 셈이다. 퇴직연금 제도는 기업이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과 생활안정을 위해 근로자 재직기간 중 사용자가 퇴직금 지급재원을 외부의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이를 사용자(기업) 또는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운용해 근로자 퇴직 시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기업복지제도’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도는 법정 퇴직금 제도와 달리 노사합의에 의해 자율적으로 도입하는 제도로 강제성이 없다. 때문에 지난 2005년 12월 도입된 이후 규모면에서는 본격적인 성장단계에 진입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오는 7월 개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을 앞두고 그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 되고 있는 것이다. 감독강화 키워드 “기업·근로자 장기적 이익 보장”최근 금융위는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금융회사로서 외형 확대보다는 기업과 근로자의 장기적 이익을 우선하도록 유도하고 공정하고 건전한 시장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그 감독과제로 △퇴직연금 사업자의 불합리한 수수료 체계 개선 △퇴직연금시장의 불공정 거래구조 개선 △퇴직연금 가입자에 대한 설명·고지 의무 강화 △퇴직연금사업자의 계약체결 강요행위 엄정 대응 등을 내세웠다. 이와 관련 진웅섭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3월 현재 누적 적립금 규모가 51조8000억원으로 최근 2년간 약 37조원이나 늘어나는 등 퇴직연금시장이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진입했지만 고비용 구조를 중소기업 등 가입자가 부담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퇴직연금 감독규정 마련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퇴직연금 시장을 살펴보면, 사업장 기준 도입률은 전체의 10.1%(15만3000개소)에 그치고 있지만 전체 상용근로자의 40%인 365만1000명이 가입된 상황이다. 이렇게 시장은 양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뤘지만 그 운용실태를 들여다보면 내용은 외형에 비해 제 모습을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선 전체 적립금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로 운용(92.8%)되고, 실적배당형 상품 운용은 5.7%로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퇴직연금 신탁계정과 고유계정간 거래가 여전히 과도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에 금융위에서는 금융회사가 유치한 퇴직연금을 운용할 때 편입할 수 있는 자사 상품비중 한도가 70%에서 50%로 축소할 방침이다. 또 퇴직연금 운용의 대가로 받는 수수료가 가입기간에 따라 줄어들고 상한선이 책정된다. 아울러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몰아주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거래현황을 주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등 퇴직연금시장의 불공정 거래구조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퇴직연금 금융사 자사상품 비중도 50%로 축소 이를 놓고 시장 일각에서는 반대의 여론이 일고 있다. 퇴직연금사업자가 자사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비중을 기존 70%에서 50%로 축소한다는 것은 기존 퇴직연금가입자의 신용도와 실력을 믿고 선택한 것에 대한 믿음에 반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할 때 적립금의 92.8%가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운용되고 있으며 은행은 지난 4월말 현재 자사상품 비중이 92%로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금융위가 지난해 8월 원리금 보장상품 중 자사상품 비중을 70%로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한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금융사가 고금리로 유치 경쟁을 계속하면서 역마진 손실은 자사상품을 운용하는 고유계정에서 흡수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금융위는 6월중 감독규정을 개정해 자사상품 비중을 현행 70%에서 50%로 낮추기로 했다. 또 앞으로 퇴직연금 시장 여건 등을 봐가면서 이를 30%까지 낮출 예정이다. 금융회사가 퇴직연금에 들어온 돈을 굴릴 때 예금 등 자사의 원리금 보장상품 편입비율을 더 낮추겠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특정 금융기관의 상품 편입 비중이 높은 소비자들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적립금의 최소 50% 이상을 다른 금융기관 상품으로 옮겨야 한다. 사람들이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대목이다. 퇴직연금 상품을 취급하는 한 시중은행 담당자는 “퇴직연금을 선택할 때 우리은행의 장점을 보고 가입한 고객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가입 고객이 우리 은행과 관련된 상품만 고집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 상품 선택권은 고객에게 있는데 은행에서 알아서 비율을 낮추라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렇게 인위적인 편입비율 제한은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여론이다. 현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 퇴직연금 가입자는 운용 방법을 스스로 선정하도록 돼있지만 이번 규정은 이런 권한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위험자산에 한해서만 운용 비율을 제한하도록 한 시행령과도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기관에 몰려 있는 자산을 위험자산으로 보는 금융위의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권 보다는 근로자들의 수급권을 보호하는 데 치중했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금융위는 퇴직연금 사업자의 불합리한 수수료 체계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퇴직연금은 장기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연 0.7~0.8%포인트의 높은 수수료를 가입기간 내내 부과하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금융위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항목별 수수료를 공시하고 입출금·자금보관 수수료 등 부과 근거가 명확치 않은 일부 수수료의 폐지를 유도하기로 했다. 또 가입 기간에 따라 점점 감소하는 수수료 체계를 도입해 장기 계약을 유도하고 가입기간 내 수수료 상한과 평균보수율을 설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퇴직연금 사업자의 불합리한 수수료 체계도 개선 근로자의 평균 재직기간이 약 6.2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7년 평균보수율을 일정비율 이하로 제한하고 8년차부터는 소액의 계좌관리 수수료만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금융위는 업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3분기 중 퇴직연금 수수료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수수료를 낮추라고 하는 것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같다”면서 “이미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수료를 할인해 주는 사업자도 있다. 사업자들이 전략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하는 게 바람직하며, 일괄적인 적용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그동안 손해를 감수하면서 가입자 유치를 위해 노력했던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수수료를 낮추라는 것은 그동안 사업을 영위했던 금융사에게는 너무 가혹한 요구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또한 대기업과 계열 금융회사간 거래 비중을 주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한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대기업이 계열금융사를 퇴직연금 사업자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근로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의 합리적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이밖에 금융회사가 퇴직연금 상품 선택 단계에서 원리금 보장형 및 실적배당형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각 2개 이상의 상품군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등 설명·고지 의무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금융회사가 대출 등을 미끼로 퇴직연금 계약 체결을 강요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키로 했다.
그러나 계열사 거래비중 공시와 관련해서는 사업자별로 입장 차가 뚜렷했다. 계열사 비중이 높은 사업자의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이해관계가 갈렸다. 대기업과 관련없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시를 한다고 바로 비중이 줄진 않겠지만 가입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다”며 “다만 계열사 뿐 아니라 협력사 자금까지 합하면 일감 몰아주기가 심각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삼성생명의 계열사 비중은 57.7%에 달하고,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HMC투자증권은 무려 89.6%를 차지한다. 현대중공업 계열 하이투자증권(82.9%), 롯데그룹의 롯데손보(95.4%)도 계열사 비중이 절대적이었다.고금리 유치 증권사들 역마진 골머리그동안 고금리를 내세워 퇴직연금 자금몰이에 나섰던 증권사들이 역마진에 골치를 썩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 증권사들 주도로 해법 찾기에 나섰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증권사 퇴직연금 18개 사업자 가운데 10여 곳의 실무자들이 금융투자협회 회의실에 모여 격론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의 제시금리를 현행보다 0.4%p가량 일괄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자 모인 자리였다.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자신의 신용등급과 동일한 등급 회사채를 섞어 금리 바스켓을 만들어 결정하는데, 여기서 10%인 0.4%p가량 올릴 수 있는 조정계수를 두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형증권사들이 조정계수만큼 금리를 내리자는 의견을 냈다. 은행과 보험사는 각각 내부금리와 공시 이율에 따라 퇴직연금상품 금리를 결정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으로 HMC투자증권의 원리금보장 DB형(확정급여형) 수익률이 4.76%(연 환산)이고,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이 각각 4.96%, 4.92%다. 현대증권과 대우증권은 각각 5.44%, 5.28%로 대부분 4%대 후반에서 5%대 초반이다. 문제는 상당수 증권사가 조정계수만큼 금리를 얹어주면서 역마진을 본다는 점이다. 대부분 0.5~1%p가량 손해를 감수한 채 퇴직연금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섰는데, 갈수록 적자가 누적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리금 보장 상품액이 1조원일 경우에 최소 0.5%p만큼 역마진이 난다고 가정해도 한해 50억원 이상 손실을 가져온다는 얘기다.적립액이 많지 않은 중소형사와 적립액이 많은 대형 증권사간 의견도 확연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사는 이미 시장을 어느 정도 확보해 굳이 높은 금리를 주고 싶지 않겠지만 중소형사로서는 금리를 높게 제시해서라도 점유율을 높이고 싶은 욕구가 그대로 나타난 자리였다. 개별 증권사가 금리인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게 중소형사의 입장이다. 여기에 수수료 인하 요인도 있어 증권사 퇴직연금사업의 수익성이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퇴직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수수료가 낮아지는 CDSC(체감수수료)제도를 도입, 가입자의 수수료 부담을 완화키로 했다. 가입자 부담이 낮아지는 수준만큼 사업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도 큰 문제점이다. 퇴직연금모집인 관리 고용부-금융권 갈등 다음달 26일 시행 예정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근퇴법) 시행으로 40만 명에 달하는 보험모집 종사자(보험설계사, 법인대리점 등)가 직접 소비자에게 퇴직연금 상품 가입을 권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퇴직연금모집인의 등록 및 교육을 담당할 기관을 놓고 고용부와 금융업계간 이견이 팽팽하다. 지난 3월 근퇴법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돼 국무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고용부)는 이 개정안을 6월 국무회의에 상정할 계획이다. 지난 3월말 입법예고가 끝난 개정안이 아직까지 국무회의 상정이 안 된 이유는 퇴직연금 판매자격 관리를 어느 기관에 맡길 것이냐를 두고 고용부와 금융당국이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퇴직연금모집인에 대한 자격교육, 검정시험, 등록업무 등을 고용부 장관이 지정하는 기관에 위탁토록 규정했다. 업무를 위탁할 기관명이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고용부에 전권이 주어진 만큼 해당 업무가 고용부 산하기관인 산업인력공단에 위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반면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판매자격과 관련한 업무는 금융권의 전문 연수기관에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인력공단이 기술직 인력의 기능자격을 주로 담당, 퇴직연금과 같은 금융상품 판매 자격 관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다. 금융업계 역시 산업인력공단에 해당 업무를 맡길 경우 전문성이 약화될 수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문성이나 투자 효율성 측면에서 이미 기존 금융인력 연수를 담당해온 보험(보험연수원), 은행(한국금융연수원), 한국금융투자협회 내의 금융투자교육원(증권) 등이 퇴직연금모집인 자격 관련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실제로 현재 58개 퇴직연금 사업자 중 근로복지공단(고용부 산하)을 제외한 나머지가 보험, 은행, 증권 등 금융회사로 이들 3개 기관이 관련 직업능력 훈련 등을 실시해온 상황이다.이코노믹 리뷰 한상오 기자 hanso110@<ⓒ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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