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기자
차재연 KT 상무<br /> <br /> ▲1965년 서울 출생 ▲1988년 서울대 경영학 학사 ▲1991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1991년 KT 경영연구소 ▲1999년 KT 기획조정실 ▲2002년 KT 재무실 원가 담당 ▲2003년 KT 가치경영실(구 재무실) 자금 담당 부장ㆍ상무 ▲2010년 KTDS 경영지원실장(CFOㆍCIO) ▲2010년 KT 코퍼레이트 센터 그룹시너지 TF장 ▲2012년 KT 가치경영실 자금 담당 상무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만약 당신이 한 해 수십조원의 돈을 굴리는 대기업 여성 임원 자리를 제안 받는다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선뜻 손을 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감히 여자가 재무를 맡아?'라는 고리타분한 사회적 인식 탓이 아닐까. 어느 대기업에서나 '재무'는 남성의 전유물 중에서도 최고 영역에 속한다. "재무 담당 여성 임원은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든 별 중의 별"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다.우리나라 대표 통신 기업인 케이티(KT)는 좀 다르다. KT만의 기업문화가 독특하고, 나아가 차재연(47) 상무가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T의 가치경영실(옛 재무실) 자금 담당인 차 상무는 회사가 다섯 번째로 배출한 여성 임원이다. 지난 2009년 '별'을 달았다.거액의 돈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차갑고 딱딱할 것 같던 차 상무는 의외로 수줍음이 많았다. 사전 질문지에는 빼곡히 답을 적어 왔다. 인터뷰 이후 "하고 싶은 얘기를 미처 못 했다"면서 추가 답변도 직접 보냈다. 짧은 커트 머리에 말끔한 정장 차림의 차 상무는 겉보기엔 대장부 스타일이었지만 꼼꼼하고 세심하고 배려 깊은 여성이었다.1991년 KT에 입사 후 올해로 21년차. 말 그대로 한 우물만 팠다. '차다르크' '돌격대장'이란 별명에는 그의 지난 세월이 묻어난다. '대기업은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투자할까'라는 궁금증 하나로 시작된 그의 '돈 사랑' 스토리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여전히 진행 중인, 돈과 사랑에 빠진 차 상무의 인생 이야기를 전한다.◆'내'가 아니라 '우리 팀'이 인정받게 하라수면 아래에서 내공을 차곡차곡 쌓으며 때를 기다리던 차 상무에게 기회가 온 것은 지난 2008~2009년 무렵. 전 세계 금융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요동을 쳤고 기업에게 리스크 관리는 존폐를 결정짓는 최대 전략이 됐다. 이 때 차 상무는 자금기획 부장으로 하루하루 피 말리는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돈'과의 만남에 몸은 비록 바빴지만 벅찬 성취감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고 회상한다."연구소로 입사해 7년을 지냈고 이후 기획조정실과 원가 담당을 거쳐 부장이 돼서야 전공(자금)을 찾아간 셈이죠. 일이 얼마나 다이내믹한지 모릅니다. 정말 무서운 게 돈이에요. 넘치는 듯 하다가 갑자기 사라지곤 하죠.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팀워크는 드라마틱했어요."2009년 차 상무는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았다. 내로라하는 전문가조차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금융 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해 수백억원의 비용을 절감한 숨은 주역으로 집중 거론됐다. 차 상무는 이런 대접이 편하지 않았다."내가 골을 넣어야만 경기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이 넣으면 이기는 것"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차 상무는 "기본적으로 팀워크가 훌륭했고 위아래 간의 보고 체계와 의사결정이 신속했다"며 "모든 박자가 척척 들어맞았기에 가능했다"고 몸을 낮췄다. 또 "KT 내부에 시장 모니터링 시스템이 잘 갖춰져 돈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력이 뛰어났고 매번 운도 따랐다"고.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해 차 상무에게 임원 자리를 안겨줬다.팀플레이와 팀워크는 차 상무가 늘 강조하는 사회 생활의 '팁'이다. 그는 "'알파걸'로 자라온 여성 후배들이 각계에 활발히 진출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희소식이지만 오히려 이제까지 해온 방식만 고수한다면 조직 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나도 여자고,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느낀 점은 여자와 남자의 놀이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축구와 야구 등과 같은 팀플레이에 참여할 기회가 적다보니 내가 아닌, 우리 팀이 골을 넣으면 이긴다는 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학업, 운동, 리더십 모든 면에 있어 남성을 능가하는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을 가진 여성을 뜻하는 알파걸이 일반적으로 '내가 이뤄낸 성과'를 통해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이를 지양해야 한다는 질책이었다.◆여성 임원 탄생 "KT에선 뉴스도 아냐"차 상무는 KT 여성 직원 가운데 다섯 번째로 임원을 달았다. KT는 여성 임원 배출에 가장 적극적인 대기업. 올해 승진 예정자를 합해 총 21명의 여성 별이 곳곳에 있다. 차 상무는 "KT에서는 더 이상 여성 임원 배출이 뉴스가 안 될 정도로 지난 3년 동안 많은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된다면 그게 바로 이슈"라고 말했다. "'오히려 여성이니까 승진이 수월한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분위기"라고도 했다.임원이 되니 가장 좋았던 점은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을 꼽았다. 의외의 답변이다. 차 상무는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제 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시절과 달리 회사가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방향과 전략에 대한 의견을 최고경영진 가까이에서 전달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남녀를 떠나 후배 직장인에겐 이런 조언을 꼭 하고 싶어 했다. "내가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내가 사장'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장이라면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결정했을까. 그런 생각에 미치면 맡은 일에 대해 마지막까지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대리와 사장의 관점은 달라요.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접근하면 장기적인 안목을 갖게 되고 일 잘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결국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지더라고요."차 상무는 특히 KT는 타 대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기업문화가 있다며 '착한 기업'이라고 표현했다. 입사했을 때부터 동료 사이에선 공공연히 이런 말이 오갔다. "우리 착한 기업(KT 지칭)을 더 훌륭하게 만들어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회사 다니셨어요'라는 존경의 소리를 듣도록 하자. 회사를 위해 재미있게 일해보자."임원이 되고 의사결정을 가까이서 보니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KT 경영진은 최종 의사결정을 할 때 반드시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입사 후 지금까지 회사가 주는 이미지는 한결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