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女星②]권선주 IBK기업은행 부행장, 뱅커 35년의 '자물쇠女'

권선주 IBK기업은행 부행장 ▲1956년생 ▲1974년 경기여고 졸업 ▲1978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98년 방이역지점장 ▲2001년 역삼중앙지점장 ▲2003년 서초남지점장 ▲2005년 CS센터 센터장 ▲2007년 PB사업단 부사업단장 ▲2008년 외환사업부 부장 ▲2010년 중부지역본부장 ▲2011년 카드사업본부 부행장 ▲2012년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리 천장'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여성 임원 1세대' 시대가 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입사한 신입 공채들이 '별'을 달기 시작했다. 이른바 '여풍(女風) 시대'의 개막이다.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에이드리엔 멘델은 <유능한 여자는 많은데 왜 성공한 여자는 없을까>라는 저서에서 직장 생활에는 여자가 모르는 불문율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한다. 멘델은 유능한 여성은 많은데 성공하는 여성이 적은 이유로 "여성이 목표지향적인 남성 사회의 룰을 모른 채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려는 관계지향적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비즈니스라는 게임에서 이기려면 유능한 척, 강한 척하고 재미가 없어도 중간에 그만두지 말고,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고, 필요하면 싸우고, 팀의 일원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최근 사회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채로 입사해 조직에서 '별'을 다는 여성임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임원 1세대라는 점에서 이들이 가지는 상징성은 크다. 말 그대로 유리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한 조직에서 오랜 시간 몸담으며 남성과 당당히 경쟁해 살아남고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여성(女星)들. 유리 천장을 과감히 깨트린 여성 임원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은 어떠할까.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은 파란만장한 그녀들의 인생 스토리. 20~30대 새내기 여성 직장인 후배들에게 들려주고픈 대한민국 여성 임원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한다.<편집자주>[파워女星 임원 꿰찬 1세대 그녀들의 Success Diary]주요업무 노리기 전에 철저한 준비.. 배울 것 더 없을 때 상사에 능력 어필실적 눈에 어두워 원칙 벗어났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롤모델은 이성남 민주통합당 의원.. "태도는 부드럽게, 신념은 분명하게"가족은 고객.. 은퇴 후 가족위한 '비서실장' 될 것'직장생활의 정석'이라는 교과서가 있다면 이런 내용을 담고 있을까. 어떤 질문을 어떻게 물어도 어긋남 없는 '정답'이 돌아온다. 인터뷰 초입에는 조금 답답하더니 서서히 적응이 된다. 한 시간여 지나자 묵직한 진정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행과 술수 없이 조직에서 성공하는 법. 권선주 IBK기업은행 부행장은 인터뷰 내내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기업은행 창립 50년만에 탄생한 '첫 여성 부행장'이다. 공채로 입사한 여성이 부행장 자리에 오른 사례로 치자면, 전체 은행권을 통틀어 유일하다. 올해 초에는 기업은행 전체 리스크를 관리하는 위험관리본부의 총 책임자라는 직함까지 추가됐다. 1978년 기업은행에 입행했으니, 올해로 35년째. 어느 업종보다 유리천장이 두꺼운 금융권에서 이 정도 성과라면 분명 '비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소프트한 노하우, 깨알 같은 선후배 관리 팁, 그리고 경영진의 눈에 띌 수 있었던 비결 같은 것. 그걸 캐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숨겨진 방법이란, 권 부행장에게 없었다. 대신 모두 알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 좀 더 빠른 성공을 위해서 간과하는 것들을 카드로 꺼내들었다. 먼지를 툭툭 털고 윤이 나게 닦아 35년째 소중히 담아온 '그것'에 대한 얘기가 시작됐다. ◆"나는 준비 돼 있었다"= 일요일 저녁, 지는 노을과 함께 엄습하는 불안. 개그콘서트의 끝을 알리는 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불쾌감. 몇 번이고 뒤척여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 대한민국 직장인 대부분이 앓고 있다는 '월요병'의 증상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손뼉 치며 공감할만한 이 얘기에 권 부행장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월요병'을 겪어본 적이 없단다. 출근이 지독하게 느껴진 적도, 다른 직업을 찾으면 어떨까 하는 고민도 해 본 적 없다. 이유는 단순했다.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내가 가진 성격, 성향, 관심사, 능력과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퍼즐 맞추듯, '권선주'라는 인물의 흩어진 조각을 모으면 '은행원 권선주'로 완성되는 느낌이다. 대학시절은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관심사에 몰두하고, 마음가는대로 행동했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해서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동시에 신문ㆍ방송 쪽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방송국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신문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기도 했었으니, 하마터면 기자 선후배로 만날 뻔 했네요."그러나 결국 그는 '은행원'이 됐다. 필연 같은 일이었다. "방송국 생활도 좋았지만,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듣게 된 경제학과 경영학 수업에 더 관심이 갔어요. 그때부터 막연히 '금융인'이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은행에서 창구직원 외의 여성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미래가 담보되는 직업이라고 보기 어려웠지만, 내 자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거죠." 그렇게 1978년, 당시 중소기업은행에 입행했다. 그러나 수월했을 리 없다. 워낙 꼼꼼하고 착실한 성격이라 크게 꾸중 듣는 일은 없었지만 여직원에게 중요업무는 맡기지 않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권 부행장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준비된 상태'를 꼽았다. "많은 여(女)행원들이 본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불만을 가지지만, 그건 위에서 봤을 때 준비가 덜 돼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창구업무가 몸에 익자 그는 금융연수원의 은행업무 과정을 신청해 하나씩 둘씩 수료하기 시작했다. 신용분석업무나 외환업무 등은 특히 재미있었다. 결혼 후 저녁시간을 활용하기 힘들어지면서 통신연수를 통해 짬을 내 공부했다. 휴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그는 연수원에서 제공하는 수십 개 과정을 모두 수료하고야 말았다. 더 이상 들을 게 없었다. 광화문지점에서 초임 대리 시절을 보내던 그는 지점장에게 조심스레 요청했다. "모든 업무를 다 배웠고, 흐름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기회는 그렇게 찾아왔다. 권 부행장은 남자 행원의 전유물이었던 여신업무를 처음으로 맡았다. ◆'검은 유혹' 뿌리치지 않았다면= 2001년을 시작으로 역삼동ㆍ서초남지점 지점장을 거쳐 CS센터 센터장, 여신ㆍ외환지원센터장, 중부지역본부장, 카드사업본부장, 지난해 맡게 된 위험관리본부 부행장까지. 권 부행장의 탄탄대로는 거침없었다. 그러나 위기는 불현듯 찾아왔다. 특히 여성 지점장들이 흔히 느끼는 실적에 대한 압박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시도도 종종 있었다.이런일도 있었다. 은행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돈을 맡겼다. 소액도 아니고 수억원의 고액을 연달아 예치했다. 첫날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둘째날에는 의심이 들었다. 그 중 한 고객에게 "왜 이렇게 거금을 예치하시느냐"고 물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돈을 맡긴다는데 은행에서 이유를 왜 캐묻습니까." 상대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맞는 얘기였다. 그렇게 '이상한 손님'들은 자꾸만 몰려들었다.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권 부행장은 본점에 연락해 해당 예금들을 실적에서 모두 빼달라고 요청했다. 수십억원의 예금 예치는 실적으로 연결돼 지점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비정상적'인 예금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며칠 뒤 이들은 본색을 드러냈다. 큰돈을 이 지점에다가 맡겼으니, 우대금리를 비롯한 여러가지 특혜를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에 돈을 모두 빼내겠다고 협박했다. 일대에서 유명한 사채업자가 엮어낸 시나리오였다. 권 부행장은 "고객 개인의 자금으로 실명법에 따라 예금하는 것만 취급한다. 그 이외의 거래는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 그 사채업자는 불법 고리대금 및 추심 등 문제로 고소고발 사건에 휘말렸고, 계좌를 추적하던 과정에서 권 부행장과의 해프닝까지 포착된 것이다."여성 지점장들은 상대적으로 영업능력이 취약하다고 판단해 실적을 담보로 하는 여러가지 요구와 요청들이 많습니다. 지금 후배들도 고충을 겪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때 예금과 실적에 눈이 어두워 그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태도는 부드럽게, 신념은 분명하게= 금융업계에는 여성 임원들의 모임이 있다. 다른 업종보다 절대수가 적다보니 서로 끈끈하다. 각자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지만, 고민이나 어려운점들을 털어놓는다. 이 모임에서 권 부행장은 '맏언니' 같은 존재다. 의젓한데다, 신중한 성격이라 후배들의 신임이 두텁다. 그런 권 부행장에게도 '롤모델'이자 '멘토'가 있다. 바로 이성남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그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의 원조다. 씨티은행 입행을 시작으로 금융권에 발을 들였고, 금융감독원 첫 여성임원(부원장보), 최초의 여성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 권 부행장은 무언가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거나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이 의원에게 상담을 청한다. 이 의원은 그런 후배에게 일 할 때의 자세, 방법 등을 상세히 조언해준다. 지난해 초, 부행장으로 막 부임한 뒤 이 의원에게 받은 메일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태도는 부드럽게, 신념은 분명하게"이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었다. 부행장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하루에도 수백번 벌어지는 사건들을 감당해야했던 그 때, 담백한 이 한마디는 오히려 새로웠다. 멘토로 부터 받은 모든 것들은 후배들과 적극적으로 나눴다. 권 부행장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바로 '남자 후배들과의 관계' 형성이다. 기자 역시 궁금했다. 오래 휴학을 하거나 업종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이 많은 남자 후배를 받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 상사에 대한 불편함이나 경쟁의식 같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권 부행장은 "'그분들'의 애로사항이나 어려움을 잘 들어주고, 해결해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비밀을 지켜주고, 말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여성 선후배 모임에서 항상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대체로 여성들이 취약한 '말'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 중언부언하지 말아라. 둘째, 너무 많이 하지 말아라. 셋째, 절대 옮기지 말아라. 이 세 가지를 주로 얘기하죠. 다들 고개를 끄덕이지만, 대체로 지키지 못하고 또 어려워하는 부분입니다."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 가족과의 불화, 건강문제, 늦어진 승진. 남자후배들의 고민은 의외로 많았다. 그 얘기를 듣고 조그만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간이 흐르면 서먹했던 관계가 조금씩 풀렸다. 물론 그 이전에 상사로서 인정할 수 있는 '업무 능력'을 갖추는 것은 필수다. ◆가족은 고객이다= 현실적으로 여성 직장인들의 가장 큰 난관은 결혼과 함께 찾아온다. 한 순간에 불어난 집안일, 가족 대소사를 직장생활과 함께 풀어내야 한다. 여기에 육아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전쟁 같은 삶'이 시작된다. 시댁과의 관계 형성도 큰 문제다. 드라마에서는 직장을 가진 바쁜 며느리를 '집안일은 소홀히 하고 시댁 행사에 돈 봉투만 보내는' 인물로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TV를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 당사자가 되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권 부행장은 '시댁 어른들을 고객처럼 모시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항상 미리 양해를 구하고, 평소에 마음을 써 드리면, 결과가 어떠했든 내 상황을 이해해 준다. 고객 만족도의 비밀은 '진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궁리하지 말고, 정말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을 항상 전하라"고 조언했다. 남편과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항상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큰 지원군으로 '가족'을 꼽았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남편은 야근하는 아내, 아침식사 못 챙겨주는 아내를 이해해줬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 밑에서도 훌륭히 자라 큰 아들은 의사, 둘째 딸은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으니 항상 고맙다. 권 부행장은 은퇴 후 '비서실장'이 되는 게 또 다른 꿈이라고 했다. 금융인 출신의 비서실장.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던 순간, 그가 답한다. "은행원 이외의 직업은 저에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이 쯤 되니 다른 직업이 가지는 희노애락을 대부분은 간접경험 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가족들의 '비서실장'이 될 생각입니다. 바쁘게 살고 있을 우리 가족들만을 위한. 이제까지 저를 도와줬으니, 은퇴 후부터는 가족을 위한 조력자가 돼야죠."두 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밖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권 부행장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설 무렵에서야 빗소리가 들렸다. 꼼꼼한 과외 선생님의 지도로 '직장생활의 정석'을 깨우치고 나온 듯한, 마음 든든해진 만남이었다.김현정 기자 alphag@<ⓒ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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