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박성우 '노루 발자국'

사흘 눈발이 푹푹 빠져 지나갔으나/산마을 길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노루 발자국 따라 산에 올라갔으나/산정에서 만난 건 산마을이다//아랫녘 산마을로 곧장 내려왔으나/산마을에 당도한 건, 산이다//먼 산을 가만가만 바라보았으나/손가락이 가리킨 건, 초저녁별이다//초저녁별이 성큼성큼 다가왔으나/밤하늘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 마치 무엇인가를 미행하는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시이다. 눈 위에 찍힌 노루 발자국을 따라가보니, 마을을 지나 산을 넘어, 초저녁 하늘에 찍힌 별빛이 되어 있더라는, 동화같은 반전이 아름답다. 서해 어느 섬에서 차를 몰던 밤, 전조등 불빛 앞에 노루 한 마리가 서있는 것을 보고, 서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잠깐 그도 나도 멈춰서서 어쩔 줄 모르다가, 정신을 차려 서로에게서 달아났다. 요즘 시절에 야생 노루를 만나다니,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먹이가 부족한 산 속을 헤매다가 도로까지 내려왔을지 모른다. 그 노루는 어디로 갔을까. 박성우의 마음이 되어 그 친구를 따라가보고 싶어진다. 봄이면 피어나는 노루귀를 찾아 기다려볼까. 좁직한 노루목에서 덫을 놓아 지키고 서있어 볼까. 집에 놓인 낡은 고가구들과 피아노의 노루발을 만지며 그리워해볼까.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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