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합천活路··여덟가지 이야기와 길동무하다

소리길ㆍ추억길ㆍ생명길ㆍ선비길ㆍㆍㆍ취향대로 즐기는 테마로드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경남 합천'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바로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천년 고찰 해인사가 우선이겠지요. 연관 검색어처럼 떠오르는 해인사 덕분에 합천은 정적이고 엄숙한 기운이 먼저 느껴지는 그런 곳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합천에 들면 해인사를 능가할 정도로 아름답고 보석같은 여행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놀라기도 합니다.마음의 소리를 찾아 떠나는 소리길에 서면 마음이 열리고, 물안개 핀 합천호의 드라이브는 신선놀음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모산재의 충만의 기는 어떻습니까.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싼 웅장산 산세들이 품어내는 기운에 정신이 맑아지고, 권세앞에 초연했던 선비의 정신을, 옛서울로 떠나는 풍경여행은 또다른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합천은 이런 아름다운 곳을 이제서야 세상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선보이려 합니다. 자식 자랑이 쑥스러운 아버지처럼 고이 품고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 풀어놓는것이지요.합천의 멋은 '합천활로(陜川活路)'라는 8개의 테마길로 엮었습니다. 이름도 참 맛깔스럽습니다. '활'은 '살리다, 소생시키다'는 뜻으로 본래 사람마다 가지고 있던 저마다의 정체성을 소생시키고 살리는 길이랍니다. 각 각의 길은 특성에 따라 소리길, 추억길, 생명길, 선비길로 불립니다. 그 길에 든다면 아마도 해인사의 합천은 이제 잊어버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미리 합천활로를 찾아봤습니다.
#1. 해인사소리길-내 마음의 소리를 찾아가야산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길이다. 단풍이 얼마나 진하게 물들면 계곡물까지 물든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불릴까. 자연이 만든 천연 터널이 떠오를 만큼 사방을 둘러싼 숲과 계곡물 소리를 벗삼아 걷다 보면 심신이 편안해진다. 특히 해인사로 통하는 이 길은 종교가 있든 없든 번뇌가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가 오케스트라 협연하듯 어우러지며 귀를 간지럽힌다. 수백 년 된 송림 숲이 뿜어내는 더없이 청량한 공기와 천 년간 이 길을 오간 이들이 남긴 풍류의 흔적들. 그 중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글귀도 있다. 최치원이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풍류를 즐기던 농산정, 해인사에 살다 적멸에 이른 성철 큰스님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사리탑등도 챙겨봐야한다. (약 6km, 도보 1시간 30분 ~ 2시간)
#2. 영상테마추억길-옛서울로 떠나는 시간 여행장년 세대들이 소싯적 뛰놀던 서울의 거리. 이제는 그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 때 그 시절 풍경을 복원한 곳이 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1960~1980년대 서울의 풍경을 150동 규모의 마을로 재현한 '합천영상테마파크'가 그것. 이 곳의 존재의 의미는 각별하다. 옛 서울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감회에 젖거나 자녀에게 과거의 서울을 알려주기에 이곳만한 곳도 없다. 워낙 서울의 옛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해 이곳에서 촬영된 작품만 수십 편.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을 시작으로 '모던보이', '서울 1945'를 비롯해 최근작 '써니', '고지전', 개봉을 앞둔 '마이웨이'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경성역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서울 도심을 한 바퀴 도는 추억의 전차도 꼭 타봐야 한다. (관람시간 1시간 ~ 1시간 30분 소요)
#3. 황매산 기적길-기 충만 모산재로~철쭉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황매산이지만 모산재(767m)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은 기(氣) 좀 안다는 사람들에겐 명당이다. 풍수학자들은 모산재에 엄청난 에너지가 흐른다고 전한다. 이러한 기운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는다. 억센 사내의 힘줄을 연상시키는 암봉들이 저마다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우뚝 솟아 있다. 그렇다고 산세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전체 산행 거리가 3.1km로 짧다면 짧은 편이지만 산행의 묘미를 듬뿍 맛 볼 수 있다. 각양 각색의 형태를 한 바위하며 그 바위틈을 헤집고 살아가는 소나무의 모습이 화폭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모산재를 오르는 길목에서는 걸음을 한 박자 늦추기를 권한다.다가오는 용의 해를 원기 왕성하게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모산재로 기운 충전 여행은 어떨까. (도보 1시간 반 ~ 2시간 소요)
#4. 합천호 둘레길-물안개 드라이브 신선놀음 따로 없네합천호는 저수량 7억 9천만 톤에 이르는 대형 호수다. 호반 전역에 승용차가 진입할 수 있는 80여km 도로망이 뚫려 있다. 이른 새벽 고요한 산안개와 물안개가 한데 몸을 섞으며 피어 오르는 풍광을 즐기는 드라이브는 합천호둘레길의 백미다. 특히 봄날 합천에서 댐을 지나 거창까지 이어지는 호반도로의 백리 벚꽃길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합천호는 붕어, 향어, 잉어 등 다양한 어종을 대량으로 방류해 빈작이 거의 없는 경남권 인기 낚시터로도 유명하다.합천호 여행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먹거리 빙어다. 12월부터 2월까지 제철이다. 둘레길 밥집 곳곳에서 빙어를 파는 곳을 볼 수 있다. 붕어찜과 잉어찜 등 합천호에서 잡히는 물고기로 요리를 내놓는 집도 많다. (약 30km, 자동차로 45분 소요)
#5. 정양늪생명길-습지 걸으며, 마음 속 티끌 훌훌정양늪은 황강 지류 아천천의 배후습지다. 경관이 빼어나고 다양한 동, 식물의 서식지로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정양늪생명길은 나무데크와 황토흙길로 조성되어 있어 습지의 생태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사색하기 좋은 장소다. 생명길에는 그야말로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무리지어 자라는 갈대, 마름, 노랑어리연, 물옥잠, 검정말, 나사말 등이 정화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일대 먹을거리가 풍성해져 각시붕어, 참몰개, 동마자, 모래주사와 같은 물고기는 물론 금개구리 등도 둥지를 꾸몄다.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와 황조롱이, 멸종위기종인 말똥가리 같은 새들도 깃들어 산다. 짧은 길이지만 느낌은 끝없이 이어지듯 아득하다. 아마도 길이 군데군데 굽이 진 때문이다. 덕분에 습지 풍경과 어우러진 황톳길이 더욱 그럴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약 6km, 도보 1시간 30분 ~ 2시간 소요)
#6. 다라국황금이야기길-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다라국베일에 싸인 한국사의 한 켠을 찾아 떠나는 역사 여행길이다.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옥전(玉田)이라는 언덕에 있던 거대한 고분군에서 2천여 점의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 바로 5세기경 지금의 합천에 존재했던 '다라국'의 흔적이다.옥전고분군은 평지가 아닌 산기슭 고분군 대부분이 그렇듯 바람도 쉬어 갈 정도로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듬성듬성 앉은 고분 사이를 거닐면 그 느낌이 독특하다. 아이들 소풍터로도 좋고 사색하며 거닐어도 그만이다. 산책로가 있고 성산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도 있다.고분 앞에 세워진 합천박물관은 다라국을 테마로 한 전시관이다. 권력과 뛰어난 문화 수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인 용봉문환두대도, 말투구, 귀걸이 등 35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한다. 다라국 지배자의 무덤이 실물 크기로 복원돼있다. (약 300m, 관람시간 1시간 30분 ~ 2시간 소요)
#7. 남명조식선비길-권세앞에 초연했던 선비의 정신을 찾아 길은 삼가면 외토리 어귀 500년 묵은 느티나무에서 시작된다. 인간에게 허락된 1백 년 일생의 다섯 곱절을 살아낸 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은 고달픔을 풀고 쉬어 간다. 마을에는 영남권 대표 선비인 남명 조식(1501~1572)의 생가 터가 있다. 조식 선생은 임금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 등용하려 했으나 거절하고 초야에서 후학을 기르는데 주력했다. 또 양반 관료의 부정부패와 지방 서리의 횡포를 지적하는 등 목숨을 건 직언도 서슴지 않았고 한다. 선생의 경(敬)과 의(義)의 정신을 기리는 흔적인 뇌룡정과 용암서원을 따라가다 보면 옳은 일이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생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삼가면은 육질이 부드럽고 신선한 한우를 맛볼 수 있는 명소로 이름이 높다. 질 좋은 한우는 남명조식선비길에서 놓칠 수 없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약 9km, 도보 2시간/자동차 15분)
#8. 황강은빛백사장길-맑은 물, 경남권 최고의 휴식처 합천을 가로지르는 합천군민의 젖줄이다. 백여 리에 이르는 맑은 물길과 깨끗한 모래사장에서 바나나보트, 웨이크보드 등 수상 스포츠와 야영을 즐길 수 있어 경남권의 대표적인 피서지다. 매년 7월 말에는 황강물 위를 달리는 수중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전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 합천에서 가장 더운 시기에 펼쳐지는 이 마라톤 대회는 '뜨겁게 놀고, 쿨하게 쉬는' 합천의 도시 색깔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이벤트이다. (약 2km, 도보 30분 소요)조용준 기자 jun21@<ⓒ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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