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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금융리더십]②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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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治 빈 자리 차지한 內治

[흔들리는 금융리더십]②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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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 “정부의 지분이 한 톨도 없는 민간기업에 대한 인사개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017년 가을 무렵,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비서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셀프 연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의 낯빛은 그만 흙빛이 되고 말았다.


문 전 대통령이 민간기업 인사 불개입 방침을 거듭 천명한 이 시기는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3연임에 시동을 걸던 때였고 금융당국은 전방위로 용퇴 압박을 가하는 중이었다. 재직기간 중 성과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있었고 눈에 띄일 만큼의 후계자군을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민간기업 인사 불개입' 발언 때문에 금융당국은 손을 뗐다. 김 전 회장은 3연임을 넘어 2020년엔 4연임까지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금융권에서 조금씩 위세를 잃어가던 관(官)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퇴한 시점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민간기업 인사 불개입이란 원칙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민간 금융회사의 자율을 위한 조치라지만 소위 ‘윗선’의 불개입은 곧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연임 가도를 위한 실적 경쟁으로 이어졌다. 일부 금융지주사는 고질적인 '조직 내 파벌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이는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의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호랑이 없으니 여우가 주인 행세 하더라

금융사 CEO들이 각종 금융사고와 불법 행위에도 연임, 3연임, 심지어 4연임에 도전할 수 있게 된 원인으로 공통으로 지목되는 지점은 정권 차원의 인사 불개입이다. 민간 금융사에 개입하고 통제하던 관치(官治) 힘이 줄어든 상태에서 금융사 CEO의 영향력이 커지는 내치(內治)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금융 관련 시민단체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잇따른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금융회사들을 통제하는 데서 완전히 손을 놓아버린 게 문제”라면서 “그러다 보니 최근 금융지주 회장들을 보면 사회적인 물의를 빚거나 불법행위를 했을 경우에 최소 사내 이사직을 내려놓거나 일시적으로 잠행하는 제스처라도 취하는 재벌 오너(Owner)들보다 더 무소불위가 됐다”고 했다.


정권 차원의 인사 불개입 원칙은 금융시장의 감시자로서 금융사를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금융당국의 입김을 약화시키는 부작용도 초래했다. 인사 불개입 원칙을 역으로 이용하는 분위기까지 등장했다는 것이 금융권 안팎의 설명이다.


금융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당국이 인사 개입을 하고 있다'는 식의 투서, 음해 하나면 목이 달아나는 상황에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느냐”면서 “이런 과정에서 금융회사 CEO의 3연임, 4연임 같은 무리한 시도가 현실화하고 당연시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로지 ‘실적’…빈발하는 금융사고

이런 가운데 금융사 CEO의 연임을 견인하는 것은 실적이었다.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연임, 3연임, 4연임을 거듭하던 2017~2021년 사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연간 순이익 규모는 2017년 9조1000억원에서 2021년 기준 16조8000억원으로 84.6%나 증가했다. ‘역대 최고’, ‘사상 최고’ 타이틀이 붙은 실적 공시는 곧 연임, 3연임 가도의 발판이 됐다.


하지만 이 시기는 여러 금융사고가 터져 금융시장의 신뢰와 안정성이 무너진 때이기도 하다. 시중은행 채용 비리 의혹(2015~2017),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사태(2019),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량 손실 사태(2019), 옵티머스 사태(2020), 디스커버리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사태(2020) 등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 CEO 중 2021년까지 이런 금융사고를 이유로 사퇴한 CEO는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유일했다.


금융산업의 신뢰, 안정성을 넘어 실적이 연임의 최대 관문이 된 이유론 외국인 위주의 지배구조가 꼽힌다. 표면적으로 각 은행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이나 실제 주인은 외국인 주주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국내 최대 금융사인 KB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73.99%에 달한다. 하나금융지주(71.73%), 신한금융지주(63.46%) 등도 외국인 지분율이 상당하긴 마찬가지다.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도 JP모건 체이스(KB), 블랙록(KB·신한·하나) 등 외국계 자본이 대부분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외국계 자본으로선 CEO의 도덕성이나 내부통제 이슈보다도 CEO의 경영실적과 배당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각 금융사가 매년 배당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외국계 주주들을 의식하는 측면이 크다. 어찌 보면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무조건 소송 GO’…스스로 잃은 권위

금융당국이 앞서 무리하게 추진했던 금융사 CEO 제재, 이에 대응한 금융권과의 지루한 소송전도 스스로의 권위를 상실케 했단 지적도 제기된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시절 금감원은 DLF 사태, 라임 사태 등 굵직한 금융사고 국면마다 금융지주사 또는 은행 CEO를 대상으로 무리한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DLF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 결정을 받았던 손 회장은 3심까지 가는 소송전 끝에 끝내 승소했다. 라임사태로 역시 중징계를 받았던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내정자 역시 주의적 경고로 감경돼 현재까지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당국의 ‘무리한’ 소송전에 금융사가 초호화 변호인단으로 맞대응하는 양상도 고착화됐다. 일례로 손 회장이 제기한 DLF 중징계 관련 무효 소송에서 금융감독원은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를 선임하고, 추후 법무법인 김장리를 추가 선임했지만, 손 회장 측은 국내 최대 로펌인 법무법인 김앤장,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화우 등을 선임해 일찌감치 역량을 총동원했다.



금융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윤 전 원장 시절 금융감독원이 금융권과 크고 작은 '다툼'을 벌였던 것도 관이 스스로의 권위를 깎아 먹은 셈이다. 금감원이 개별 소송에서 번번이 패하면서 금융사들도 더욱 소송에 적극적으로 됐다”면서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을 금융사들이 역이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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