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초동 법썰]문 열어준 '친절한 내연녀' 덕에 무죄받은 불륜남

수정 2021.09.26 18:00입력 2021.09.11 10:00
[서초동 법썰]문 열어준 '친절한 내연녀' 덕에 무죄받은 불륜남 제공=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 무더웠던 2019년 7월의 어느날. 불륜남 A씨는 친절히 문을 열어준 내연녀의 집에 편히 들어갔다. 이틀 뒤에 또 방문한 A씨. 열흘 뒤 A씨는 다시 한 차례 내연녀 집을 방문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내연녀의 남편은 A씨를 '주거침입죄'로 고소했다. 그동안 법원은 불륜 상대를 집으로 들였던 사건에 대해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해왔다.


지난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는 62년만에 폐지됐다.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거나, 징역형만 규정돼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불륜 침입, 즉 불륜 당사자가 집에 들어와 주거침입죄로 처벌 받는 상황이 늘어나며 간통죄 폐지로 인한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불륜 침입'까지 인정하지 않으며 판례를 37년만에 뒤집었다. 내연 관계인 유부녀 집에 수차례 들어갔다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남편으로부터 고소당한 A씨는 최종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동안 대법원은 지난 1984년 아내의 내연남이 남편 몰래 집에 들어간 비슷한 사건을 유죄로 판단했다.


A씨는 2019년 7월 30일 오전 9시, 내연관계에 있는 B씨와 남편 C씨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집에 들어가 내연녀가 열어 준 현관 출입문을 통해 집에 들어갔다. A씨는 이틀 뒤인 8월 1일에도 비슷한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집에 들어갔다. 열흘 뒤에 3번째 방문이 이어졌다.

1심은 A씨를 유죄로 보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남편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불륜남을 집 안으로 들이는 걸 반대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주거의 평온을 깼다는 것이다. 이 사건 범행이 원인이 돼 피해자의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른 점,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가 큰 점은 A씨에게 불리하게 적용됐다.


A씨는 항소에 나섰다. A씨는 재판에서 '주거침입죄는 '주거의 평온'을 침해해야 성립하는데 내연녀가 문을 열어줬으니 집 안의 평온을 해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결국 2심은 뒤집혔다. A씨가 집에 들어갈 당시 내연녀가 문을 열어줘 집에 들어오도록 한 사실이 인정돼 사실상 평온을 해할 수 있는 행위태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공동거주자 중 1인의 승낙을 받아 평온하게 들어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로 이 사건을 회부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을 주거의 사실상 평온으로 보면서도 "남편이 일시 부재중이라도 남편의 주거에 대한 지배관계는 여전히 존속하고 사회통념상 간통의 목적으로 주거에 들어오는 것은 남편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이므로 처의 승낙이 있었다 하더라도 남편의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은 깨어졌다 할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이 같은 행위가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6월 공개 변론에서 검찰 측은 함께 사는 이들 모두의 주거 평온을 보장하기 위해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원칙을 내세운 반면 변호인 측은 아내가 타인의 출입을 이미 허락한 상황에서 남편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고 처벌하려 한다면 가족 간 우선순위를 규정하는 문제가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명의 다수의견으로 "외부인이 공동거주자의 일부가 부재중에 주거 내에 현재하는 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공동주거에 들어간 경우에는, 그것이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침입이란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해야한다는 이유다. 즉 단순히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거주자의 주관적 사정만으로 바로 침입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반대의견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은 "주거의 침입은 종전의 판례와 같이 거주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고 이와 달리 침입의 의미나 판단기준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외부인이 다른 거주자의 승낙을 받아 주거에 들어갔더라도, 부재중인 거주자가 그의 출입을 거부했을 것임이 명백하다면 부재중인 거주자의 주거에 대한 사실상 평온이 침해된 것이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 SNS공유 스크랩

오늘의 토픽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