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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 ‘신산(神算)’ 이창호의 반집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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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단단함, 인간계 실력 넘어선 형세 판단과 끝내기 능력
스승 조훈현 무너뜨린 반집 승부…중국에서 '신'으로 추앙받은 한국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셈에 능하면 바둑에 유리하다. 여기서 셈이란 이른바 형세 판단과 끝내기 능력이다.


바둑은 판이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셈이 서툴면 전략이 꼬이고, 무리수가 나온다. 이는 패배의 지름길이다. 계산 능력의 차이는 승패를 가른다.


한국 바둑을 대표하던 기사들은 대체로 셈에 능했다.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는다면 역시 이창호 9단이다. 오죽하면 ‘신산(神算)’으로 불렸겠는가. 상대는 이창호의 귀신 같은 계산 능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한국 바둑의 전설 조훈현 9단도 제자인 이창호에게 일격을 당한 경험이 있다. 1989년 1월12일 제28회 최고위전 도전기 3국. 흑을 쥔 이창호는 스승에게 반집(0.5집) 승을 거뒀다. 이창호가 만 13세의 나이에 조훈현이라는 거함을 무너뜨린 순간이다.


[수담(手談)] ‘신산(神算)’ 이창호의 반집 승부 이창호 9단 [사진제공=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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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이 제자에게 패배한 것도 놀라웠지만, 반집 승부에서 졌다는 게 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바둑 기사에게 반집 패는 악몽이다. 특히 중요한 대국에서 반집 패를 당하면 그 충격파는 평생을 간다.


반집 승부는 팽팽하게 치고받는 대국이 막판까지 이어질 때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누가 이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승부다. 하지만 반집 승부의 당사자가 이창호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기에 ‘돌부처’로 불리는 이창호의 무서움이 숨어 있다.


돌처럼 단단한 기풍, 좀처럼 변하지 않는 표정. 이창호의 상대는 자기가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헷갈린다. 그런 이창호의 단단함은 상대를 스스로 무너지게 한다. 이창호는 판이 불리할 때도 좀처럼 무리수를 선택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상대는 긴장한다. 분명 내가 유리한 판인데 형세 판단을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이창호의 또 다른 무서움은 기세를 올렸던 상대에게 반집 패를 안겨줄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 비밀은 이창호의 기풍에 있다. 이창호가 대국 초중반부터 단단하게 잠글 경우 상대가 패배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이때 대국을 중계하던 해설자는 "이창호의 계산이 섰다"는 말로 판세를 요약한다.


어떤 상황 변수가 발생해도 승리는 결국 이창호 차지가 될 것이란 예언이다. 그 예언은 대부분 맞았다. 이창호는 승리에 대한 판단이 서면 더 단단히 잠근다. 계속 양보하는 이창호를 보며 상대는 기세를 올리지만 결국 패배를 피할 수 없다. 이창호가 인간계 실력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하지만 이창호도 결국 사람이다. 세월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현재의 나이에 전성기 시절의 계산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기원이 발표한 6월 기사 랭킹에 따르면 이창호는 49위 수준이다. 신진서, 박정환 등 이창호보다 강한 기사들이 국내에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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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은 예전 같지 않다지만 누가 이창호를 가볍게 여길 수 있을까. 이창호가 한국 바둑의 보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자존심 강한 중국에서 ‘신’으로 추앙받았던 한국인. 이창호의 명성은 세계 바둑계에 지울 수 없는 역사로 각인돼 있다.


편집자주수담(手談)은 말이 없이도 뜻이 통한다는 의미로 바둑 또는 바둑을 두는 일을 의미합니다. 바둑을 둘러싼 인물과 사연을 토대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내용의 연재 칼럼입니다.



류정민 문화스포츠부장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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