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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쩜오와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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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쩜오와 알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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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개인적으로 '쩜오(0.5)'를 매우 애달프면서도 희극적인 수(數)로 여긴다. 과거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박명수가 스스로를 종종 '쩜오(1.5인자)'라 부르던 상황이 떠올라서다. 1.5는 유재석을 앞지를 만한 1인자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2인자임은 인정하기 싫어 기어코 쥐어짜낸 박명수 자신의 좌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끝내 중간에 주저앉고 만 모양새가 연상된달까. 얼마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3차 재확산과 관련해 정부가 내놓은 거리두기 방역 방침을 보며 이 해묵은 '쩜오 개그'가 다시 떠올랐다.


지난달 29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관련된 정부 대응책을 내놨다. 안팎에서는 정부가 이미 정해놓은 다섯단계(1, 1.5, 2, 2.5, 3단계) 중 수도권 2.5단계 격상을 예측했다. 정부는 당초 1, 2, 3으로 구분되던 거리두기 단계를 지난달 초 다섯 단계로 늘리면서, 그 기준으로 일평균 확진자 수를 내세웠다. ▲1단계는 수도권 100명 미만 ▲1.5단계는 수도권 100명이상 ▲2단계는 일주일 연속 300명 초과 ▲2.5단계는 400~500명 이상 ▲3단계는 800~1000명 이상이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29일을 기준으로 가까운 1주일(23~29일) 간 지역감염자 수는 일평균 416명이었으니, 2.5단계 격상기준이 충족된 것이다.


그러나 발표된 것은 '쩜오'가 아니라 예고 없던 '+α'였다. α는 그리스어 자모의 첫째 글자인데, 가산될 수의 크기를 잘 모를 때 애매모호하게 뭉뚱그리려는 용도로 쓰는 미지의 수다. 현행 2단계에서는 유흥주점, 단란주점, 감성주점, 경마 등 특정 업종만 영업이 중단되고 실내체육시설에 대해서는 오후 9시 이후 중단토록 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날 자칭 '2+α' 단계를 내놓으며 에어로빅이나 줌바같이 격렬한 스포츠를 하는 체육시설에 한해서는 2.5단계에 준하는 영업중단을 지시했다. 확진자 수에 따른 거리두기 단계에 이어 중단업종 기준까지 기존의 것을 번복한 셈이다. 오늘(1일)부터 수도권은 이 같은 2+α 단계, 비수도권에서는 1.5단계(격상) 수준의 방역지침이 이달 14일까지 유지된다. 지역사회 유행이 심한 부산은 자체적으로 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까지 3단계 수준으로 방역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정 2인자의 입에서 나온 이 미지(未知)의 +α단계와 방역방침은 행간을 읽으려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수점이 한자리 더 늘어난 2.25단계 신설', '식당에서 3인분 같은 2인분을 달라고 하는 심리'와 같은 조소와 설왕설래를 일으켰다. 기존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의 대원칙이 공중분해되고, 알파만큼 더 애매모호해진 방역규칙 내에서 국민들은 자칫 우리끼리의 개싸움을 벌여야 할 지 모르게 된 것이다.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부의 구슬땀은 이해하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들이 대체로 어떻게 결론났는지는 정부가 더 잘 알 것이다.



지난해 출판업계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흔)'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우울'을 다룬 책이다. 특히 극심한 절망과 사소한 열망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압축한 제목이 흥행에 한 몫을 했다. 그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들게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부 역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작가가 허락한다면 오늘의 칼럼 제목을 이렇게도 바꿔보고 싶다. "코로나19는 막고 싶지만 3단계는 가기 싫어".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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