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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프레임]시간을 가두다_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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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프레임]시간을 가두다_작업노트 우리가 사진에 담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그것, 그 대상이 아니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과 시각이다.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20년을 말린 꽃에 안료를 뿌렸다. 그러자 그것은 단지 마른 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이 있는 다른 '무엇'으로 내게 다가왔다. (제공=조아조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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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하게 살기로 마음먹어본 적이 없다. 난 태생이 복잡하고 질퍽대고 미련이 많고 뭔가 버리거나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 건 꿈도 꾸지 않는다. 그래서 내 주변은 남들이 보기에 늘 쓸데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걸 모으기보다는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장 난 시계들, 오래된 인형들, 심지어 목이 부러진 인형들, 각 나라에서 집어온 가면들, 누군가가 보내온 편지나 엽서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꽃들이 시간을 가둔 채 내 주변에 그득하다. 10년, 20년…, 어떤 것들은 더 많은 시간을 가둔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들은 롤랑 바르트가 말한 '그것이-존재-했음'을 도출하는 양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몇 년 전부터 그 아우성을 견디지 못하고 사진의 본질인 그것이-존재-했음으로 찍기 시작했다.


시든 꽃들을 카메라 속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시작은 20여년 전 선물 받은 꽃이었다. 예뻤다. 그런데 꽃병에 꽂아 시들고, 소멸되어가는 것이 싫었다. 선물한 자의 마음이 소멸되어가고 그것들이 버려지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물에 꽂아 생명이 절정에 달한 후 썩으며 소멸해가는 대신 그대로 말라서 내 곁에 존재하는 것으로 대신하며 내게 온 꽃들을 한데 모아두었다. 그냥 물 없이 꽃병에 꽂아 그들을 미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의 숙명대로 수분을 잃으며 새로운 형태를 재생산하며 다들 각각의 형태 속에 시간을 가두었다.


새로운 형태감이 흥미로워 하나둘 카메라 앞에 놓고 수년을 들여다보며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미라가 된 꽃들일 뿐이었고 흥미로운 형태를 지닌 사물에 불과했다. 다시 카메라를 접었다. 또 한 해, 두 해가 지나갔다. 스튜디오를 이사하며 그것들을 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들은 이미 내게 더 이상 그냥 꽃이 아니며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나와 의식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은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아아, 20여년의 시간 동안 난 그것들의 외면만 바라본 것이었구나. 10여년 넘게 학생들에게 늘 말하던 것을 정작 내 작업에서는 잊고 있던 것이다.


'사진가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단지 재현을 위해서가 아니다. 사진가의 사상과 삶이 그 안에 녹아 있어야 한다. 내가 찍는 것은 바로 나다.'


[조선희의 프레임]시간을 가두다_작업노트



나와 특별한 관계인 그들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부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한 컬러에 한창 심취한 나는 그들에게 형광의 요란한 색들을 입히기 시작했다. 오, 이럴 수가! 그들의 본질이 변했다. 꽃이 아니라 '시간을 가둔 어떤 것'으로 변했다. 그것들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몇 년을 그냥 시든 꽃으로만 내 카메라 앞을 왔다 갔다 하던 그들이 사랑스럽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사진에 담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그것, 그 대상이 아니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과 시각이다.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사진의 본질은 롤랑 바르트의 이론대로 그것이- 존재-했음을 넘어 내게 '그것을-사랑-했음'으로 다가온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이 작업들을 보고 다시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다, 수천, 수만의 시간 동안 서서히 생명력을 잃으며 다시 새로운 형태감을 만들어낸, 생명체였으나 이미 그 생명은 고갈된 그들에게 색을 입힘으로써 살려내려 한 것이다.


난 오래된 것들에 자꾸 마음이 간다. 나와, 혹은 누군가와 함께한 세월에 대한 미련 혹은 애틋함 때문일 게다. 모든 사라지는 것을 인정하면 엄한 데 힘주고 살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난 모든 사라지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라지는 것에 집착했다. 그것들이 나와 내 시간 속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어떤 관계 속에 거주하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내다 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보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희 사진작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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