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한국은 부양 대상이 아닌 동맹' 제목으로 공동 기고했다. 기고문의 요지는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한 동등한 파트너이자 부유한 한국은 국방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도 지난 16일 한 간담회에서 남북협력을 단독 추진하려는 한국이 대북 제재 이탈의 오해를 피하려면 미국과 사전에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고위관료들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및 대북 정책과 관련해 전방위 태클을 걸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덜 내고 더 밀어붙일 수 있을까.
해리스 대사는 문재인 정부의 남북협력 추진 시 제재 가능성을 언급해 '주권 간섭'으로 비쳤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식 가치를 그대로 이행할 뿐이다. 오히려 트럼프 정부와 미국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국 우선주의의 선봉장일 뿐 비난해봐야 바뀔 것은 없다. 그들은 한 팀이다. 기고문에서 첨단 전력을 포함한 미국의 한국 방어 기여 언급은 이제 유형뿐만 아니라 무형상 '안보' 지식재산권의 로열티도 내라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폭스뉴스에 한국은 "더 많이 낼 것"이라 했다. 선거용을 넘어 다음 임기 내내 압박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한국이 동맹으로서 해야 할 일은 기고문에 나와 있다. "한국이 더 많이 부담하면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linchpin)으로 남도록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에겐 첨단 무기 구매는 이미 당연지사라, 방위비 분담과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이 추가된다. 한편 한국이 원하는 미국이 동맹으로서 해야 할 일은 기고문 그대로 전 세계, 동북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보장하는 것이다. 비핵화를 위한 국제 제재 틀 내에서 남북협력을 부분적으로 보장해달라는 의미다. 폼페이오ㆍ에스퍼 기고건은 돈을 더 내면 해결되지만 문제는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다. 연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한국 입장에서는 분담금을 적게 내고 남북협력이 가능하다면 가장 좋다.
지난 16일 이후 한미관계의 전개에 몇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이 비용을 더 냈는데도 미국이 남북협력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인데 가장 현실성이 높다. 둘째, 한국이 더 내지도 않고 미국도 허용하지 않는 경우이나 한국이 안낼 재간이 없다. 셋째, 한국이 더 내고 미국도 허용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반대 급부를 확신해야만 가능하다.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에 분담금과 대북정책은 별개란 사실이다. 우리의 입장과 미국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과연 우리의 뜻을 미국에 관철시킬 수 있을까. 미국이 이란 군사령관을 참수작전으로 제거했음에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은 것은 이란의 보복능력을 우려해서이다. 중국과의 무역휴전도 중국이 트럼프의 지지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력 때문이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남북협력을 허용할 만한 '한방'이 있는가. 한국은 대미 레버리지로 쓸 수 있는 카드들이 있는가. 만약 미국이 남북협력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차선의 이익과 타협할 것인가. 전시작전통제권, 인도ㆍ태평양전략 등과 교환할 것인가.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을 직접 목도했다. 그 때문에 집권 시작과 함께 대미(對美) 협의를 '유리그릇 다루듯' 했다. 그러나 지난 2년여 겨우 싹튼 평화의 씨앗을 어떻게든 피우려면 이번에 반드시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아닌 다마호사(多魔好事),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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