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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일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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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일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무언가' 김보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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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이는 그저 살피면 된다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내게 좋은 지침을 준 미술관이 있다.


독일 북서부 노이스에 있는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꼭 가봐야 하는 세계의 미술관 리스트에 항상 포함되는 특별한 곳이다. 인젤홈브로이히는 뒤셀도르프의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컬렉터인 카를 하인리히 뮐러(1936~2007)가 설립한 미술관이다. 그는 점차 거대해지는 근대적 미술관에 회의를 느꼈다. 큰 규모의 미술관은 관람객과 작품의 거리를 멀리 떨어뜨리고 감상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뮐러는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미술관을 만들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작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작가 이름, 제작 연도, 재료, 크기 등 미술관이 강요하는 어떤 설명도 없다. 카메라 셔터를 감시하고 작품을 만지지 말아달라고 하는 지킴 요원조차 없다.


그렇다고 작품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 폴 세잔 등 주요 근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은 물론 고대 유물, 중국 도자 같은 골동품과 동시대 작가의 작품까지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미술사 지식이 필요 없다. 전시기획자의 의도를 알 필요도 없다. 그저 숲속을 걷다 우연히 작품과 마주하거나 붉은 벽돌 건물 안에 전시된 작품을 한없이 바라보면 그뿐이다.


1987년 개관한 이 미술관에서 심각한 도난이나 훼손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통제받지 않는 관람자들은 오히려 스스로 작품을 보호한다. 미술관이 관람자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나무와 하늘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빛이 가득 드는 유리 건물에 소박한 점심까지 준비돼 있다. 투박하지만 맛있는 건강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이들 음식은 모두 주변 농가에서 나는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자연을 통해 영감을 얻고 자연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미술관과 화랑 등 제도적 장치가 생겨나고 예술작품의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예술가의 순수한 마음을 가리기 시작했다. 위대한 예술가 대다수는 내적 고뇌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저 자기 작품이 누군가에게 느껴지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작품을 보는 걸까. 아니면 포장된 환영을 보는 걸까. 뮐러는 작품 자체로 소통되기를 원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서는 작품을 가만히 받아들이면 된다. 그 순간 예술은 곧 자연이 된다. 관람자는 작품을 감상하며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예술 체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세계적 미술관으로 성장한 인젤홈브로이히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뮐러는 미술관과 소장품을 시에 기증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도 미술관이 존속할 방법을 찾은 셈이다. 미술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예술을 사회에 환원하는 모범까지 알려준 뮐러는 지금 그곳의 고요한 언덕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곳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건 말없이 보여주는 것임을. 자연과 예술이면 족하다. 입시 종착역이 아닌 다른 행복한 곳도 많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의미 있는 삶을 찾아 생각의 길로 맘껏 달려갈 수 있다. 때로 무언의 울림이 근원을 보고 마음으로 듣게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적어도 무례하거나 소란하진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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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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