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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 경기바닥 신호…지금이 강한 재정정책 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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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등 3차 금융완화
예전보다 효과 크지 않을 전망
한국, 선진국보다 재정 양호해

곳곳 경기바닥 신호…지금이 강한 재정정책 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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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두 번의 금융 완화 사이클이 있었다. 1차는 2009년 중반부터 2010년 7월까지 1년여에 걸쳐 진행됐다. 미국의 양적 완화 시행이 계기였는데 1조8000억달러(약 2141조원)의 돈이 투입됐다. 이 조치는 국내외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 1차 완화 사이클을 계기로 세계 경제가 회복국면에 들어갔고 그 덕분에 주가도 빠르게 상승했다.


2차 완화 사이클은 2012년에 시작해 2년간 이어졌다. 미국이 2차 양적 완화에 나선 데다 재정 위기에 시달리던 유럽이 유동성 공급을 함께 늘린 게 계기였다. 2차 완화로 유럽이 위기에서 벗어났고 선진국 경제가 장기 확장국면에 들어가는 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7월부터 3차 완화사이클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계기는 미국이 제공했다. 7월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인하했고 9월에 한번 더 내렸다. 이 즈음 다른 나라도 금융완화에 동참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예금금리를 -0.4%에서 -0.5%로 내린 데 이어 11월1일부터 월 200억 유로 규모의 자산매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작년 말 끝냈던 자산매입프로그램을 불과 1년도 안돼 다시 시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국도 동참했다. 8월에 인민은행이 금융기관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하해 1월 이후 8개월 만에 금리 인하를 재개했다. 이 조치는 3개월 간 총 9000억위안(약 150조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선 것도 이 즈음이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Fed에 앞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7월 금리 인하 이후 한동안 기다릴 거란 전망과 달리 석 달 만에 또 다시 금리를 내려 우리나라 기준금리도 사상 최저가 됐다.


3차 금융완화는 앞의 두 번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을 걸로 전망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번의 강한 정책으로 이미 금리가 낮은 상태여서 추가로 내려본들 약발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유동성에 대한 반응이 떨어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이미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1, 2차 완화 때에는 선진국 주가가 40% 이상 올랐지만 이번에는 금리 인하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당시 우려했던 부분이 있다. 경제가 최악인 상태에서 적극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에 경기가 쉽게 돌아섰지만 저금리 상황에서 빨리 빠져 나오지 못하면 상당한 후유증을 겪을 거란 내용이었다. 후유증으로 얘기됐던 주요한 부분이 자생력 약화다. 경제가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이라는 외부 도움을 받는데 익숙해지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이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유럽이다. 미국이 2016년 이후 금리를 올리는 기간에 유럽은 한 번도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수 차례 양적 완화를 통해 돈도 충분히 공급했지만 경제가 1년째 침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독일 한 나라에 그쳤던 마이너스 금리가 이제는 프랑스, 벨기에 등 많은 나라로 퍼질 정도다. 금융 정책을 조금만 약하게 시행해도 경기가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자생력이 약해진 것이다.


미국은 제조업 경기 둔화 때문에 고민이다. 8~9월 두 달간 구매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가 기준선 50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둔화가 조만간 제조업 둔화가 소비를 포함한 전 부문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내년 미국의 성장률이 1%대 중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비해 7월 이후 두 번이나 금리를 내렸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금융완화 정책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진국들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썼던 도구가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새로운 정책의 도입이 필요해졌다. 재정 정책이 그것인데 정부가 직접 돈을 사용해 경기를 부양하는 게 목적이다. 재정 정책은 효과면에서 금융 정책보다 낫다. 금융 정책이 대증적인 처방인 반면 재정 정책은 특정 목적에 에너지를 집중해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각국의 사정이 재정 정책을 강하게 시행하기 힘든 상태라는 점이다. 올해 미국의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정도 될 걸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위기 초기에 해당 수치가 9%까지 올라간 적이 있지만 이는 비상상황에서나 나오는 수치여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과거 경우에 비춰볼 때 재정 적자를 4% 넘게 가져가긴 힘들다. 미국 의회 입장에서도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공화, 민주 어떤 쪽도 증세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예산안을 적극적으로 깎을 가능성이 높아 재정 적자를 통한 경기 부양이 쉽지 않을 것이다.


유럽은 독일이 문제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균형 재정을 중시해 온 나라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정부 기능이 무너진 경험이 있어 재정에 부담이 되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한다. 남부 유럽 국가들은 다른 이유 때문에 재정 정책을 꺼린다. 2011년에 재정 위기가 발생해 경제가 디폴트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는데 아직도 그 때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곳곳 경기바닥 신호…지금이 강한 재정정책 펼 때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재정이 대단히 양호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산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중앙정부의 재정수입(총수입)은 24.6% 정도다. 정부부채 비율은 GDP의 40% 선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하면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 수지뿐 아니라 적자비율 면에서도 강력한 재정 정책을 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태임에도 재정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한 건 소극적인 재정 운용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작년같이 경제 상황이 악화될 때에도 기껏해야 재정 지출 속도를 조절하는 정도에 그쳤다.



최근 중에서 경기가 바닥에 도달했다는 신호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산업 활동 동향과 고용 사정이 나아진 점이나 올해 2분기를 저점으로 반도체 경기도 회복국면에 들어간 게 그 증거다. 경기가 회복되는 초기일수록 강한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 경기가 둔화될 때에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반면 회복국면일 때는 약간의 재정 투입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 경제가 좋지 않을 때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통해 경제의 잠재력을 키우는 건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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