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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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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파괴를 거듭하며 자생한 베를린의 생명력

[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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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악단을 거친 주요 지휘자들의 면면과 성과, 오케스트라의 기량과 수준을 기준하면 오늘날 세계 오케스트라의 양대 기둥은 베를린 필하모닉(Berliner Philharmoniker)과 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이다. 음악감독을 두지 않는 빈 필에 비해, 특히 베를린 필은 음악감독의 거취가 악단의 중대 변화로 인식되면서, 구성원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에 오른다.


도쿄 하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지난 7월, 2020년 올림픽 문화축전의 하이라이트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방일(訪日)을 알렸다. LA 필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로 내년 6월 베를린 필은 도쿄에서 콘서트홀 연주회와 야외 공연을 갖는다. 조직위 입장에선 베를린 필의 브랜드 가치로 페스티벌의 격을 높이고자 했다. 베를린 필을 대하는 우리 입장도 비슷하다. 1984년을 시작으로 2005·2008·2011·2013·2017년 베를린 필 내한 공연의 티켓가는 클래식 공연 최고가를 경신했다. 해당 시점에서 맛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극치가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열의가 금전 가치를 웃돌았다.


베를린 필의 역사는 명성에 비해 그리 오래지 않다. 1882년 창단되어 130년 남짓의 세월 동안 도시가 처한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일류 음악가들을 한데 모았다. 초창기에는 빈 국립음대의 사제 관계에 따라 단원을 보충해서 비슷한 충원 과정을 거친 빈 필과 사운드면에선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차 대전 기간 나치 정권의 개입으로 유태 단원들이 사라지고 참전한 독일 단원들이 사망하면서 자연스레 빈 필의 단원 구색과 거리가 멀어졌다.


한스 폰 뷜로, 아르투로 니키쉬 감독으로 초석을 닦았고, 나치 시대의 영욕을 함께한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독일 악단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1955년 감독에 부임한 '제왕' 카라얀은 세계 최고의 앙상블을 목표로 다양하게 인재를 등용했다. 녹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오디오 기기로 즐길 수 있는 음향적 쾌감에 충실한 다양한 레퍼토리들이 베를린 필에 들어왔다. 카라얀 시대를 거치면서 베를린 필은 비로소 독일 지역 악단에서 벗어나 국제 도시 서베를린의 새로운 컬러가 악단에 완전히 주입됐다. 동양인 악장(다이신 카시모토)를 비롯해 한국인 단원(비올리스트 박경민)이 현재 악단에 활약하기까지, 카라얀의 개방성은 훗날 단원들의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일 현지 시간 8월23일 저녁 7시 베를린 필은 새 예술감독 겸 수석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의 취임 연주회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갖는다. 프로그램은 알반 베르크 오페라 '룰루' 중 관현악곡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으로 짜여 졌고, 성악 진용에는 한국인 베이스 연광철이 포함됐다.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감안해 '악성(樂聖)'의 대작이 시즌 프로그램에 대거 포함됐지만 '합창'으로 개막 공연을 갖는 건 이례적이다.


페트렌코의 베를린 필은 25일 베토벤 '합창'을 도시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도 연주한다. 1989년 성탄절에 레너드 번스타인이 독일 통일을 축하하면서 '합창'을 지휘한 장소와 같은 곳이다. 콘서트홀 입장권이 없는 베를린 시민들도 무료로 즐기는 야외 음악회로 페트렌코 시대를 함께 하자는 안드레아 쥐츠만 베를린 필 행정감독의 뜻에 구성원들이 함께했다.


페트렌코의 취임은 컴퓨터만 있으면 베를린 필 공연의 생중계 플랫폼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시즌 40여회 이상의 정기 연주회가 고화질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중계되고, 연주자 인터뷰와 작품 해설, 역사를 회고하는 아카이브 영상과 다큐멘터리가 디지털 콘서트홀에 망라됐다. 시즌 시청권 수익과 무관하게, 디지털 콘서트홀은 2002년부터 15년 넘게 베를린 필을 집권한 전임 감독 사이먼 래틀이 남긴 최고의 유산이다.


카라얀이 1989년 사망하자, 악단은 후계자를 단원 선거를 통해 정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래틀 모두 선거전까지 음악계에선 각각 로린 마젤, 다니엘 바렌보임에 밀린 다크호스였다. 그러나 정작 투표권을 가진 베를린 필 단원들은 자신들의 수장을 정할 때, 비단 조직의 자존 논리를 넘어 클래식의 앞날을 내다본다는 점에서 예상을 깬 선택이 이어지고 있다.


래틀 후임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드리스 넬손스(현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 크리스티안 틸레만(현 드레스덴 슈타츠 카펠레 음악감독), 두다멜, 야닉 네제 세갱(현 뉴욕 메트 음악감독) 등 언론에 거명된 후계자들은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과 직간접으로 연관됐지만, 두다멜과 세갱은 자발적으로 거취를 정하면서 후보 대열에서 나왔다. 2015년 5월 1차 투표에선 새 수장을 배출하지 못했고, 6월 2차 투표에서 무명의 페트렌코를 선출했다. 베를린 필 최초의 러시아 감독, 유태계 리더가 탄생한 것이다. 페트렌코는 객원 지휘자 시절 리허설까지 마친 다음 본 공연 전에 하차한 경험이 있어, 책임자로 적합한 인물인지 의문 부호가 바로 붙었다. 불과 세 차례 정도의 과거 공연에서 관찰한 수완과 음악성에 단원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베팅한 셈이다.


그래서 약정된 최초 임기 동안 페트렌코는 쉼 없이 잠재력의 실체를 증명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베를린 필 단원들이 기대한 페트렌코의 미래 가치는 '안티 마에스트로'(비거장성)다. 활동 성향은 감독직을 맡지 않은 채 과거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와 베를린 필을 오가며 자신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주요 악단을 아우른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행보에 근접한다. 바그너 악극을 다루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뉴욕 메트에서 함양한 그랜드 오페라를 대하는 페트렌코의 넓은 시야는 해당 분야에 미흡했던 래틀의 허전함과 대비된다.


기본적으로 베를린 코미세오퍼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면서 페트렌코가 위기 상황에서 보인 순발력은 독일 오케스트라 주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형화된 틀을 깼지만 기조상으론 온건한 독일 고전 해석은 고여 있는 물이나 박물관 유물 취급을 거부하는 베를린 필 단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병적일 만큼 디테일에 몰두하는 페트렌코식 접근을 베를린 필 단원들이 어느 정도 포용할지가 롱런을 결정할 것이다. 감독 지명 후 객원 지휘가 거듭되는 동안에도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음악적 성향이 다른 단원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는 드물었다. 파보 예르비처럼 술 한 잔에 단원들과 흉금을 터는 지도자의 자질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엔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지만 쥐츠만 행정감독의 설득에 따라 시즌 기자회견과 투어 간담회에선 페르렌코의 육성을 들을 기회가 생길 것이다. 올 시즌, 베토벤의 실험이 끝나면 상성이 맞는 독일 관현악 레퍼토리가 간추려질 것이다. 그동안 과거 조직에서 관현악 CD를 거의 남기지 않은 독특한 궤적 탓에, 최근 선보인 페트렌코의 베를린 필 자체 레이블 음원은 소장 가치가 높다.


거시적으론, 콘서트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다니엘 바렌보임 감독)로 각자의 역할이 적절하게 배분됐던 시기를 지나, 도시에는 전례가 없던 관현악과 오페라를 또 다른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달라진 베를린 필의 역할을 구성원들은 기대한다. 베를린 필이 향후 2020-30년대 어떤 미래를 그릴지 페트렌코의 인선으로 가늠할 수 있다. 19세기말부터 최근 유로존의 위기까지,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면서 자생한 베를린의 생명력이, 오케스트라의 미래 비전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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