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트발' 성장 신화 균열
팬데믹 특수 속 성장…중개형 모델 한계
대형 이커머스 공세로 판도 재편 전망
옥석 가리기 본격화
국내 1세대 온라인 명품 플랫폼으로 꼽히던 발란이 결국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수천억원대 거래액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던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 가운데 한 축이 무너지면서, 온라인 명품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적 취약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발란은 지난달 24일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입점 판매자 정산 지연 사태 이후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추가 자금 확보에 실패하며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발란의 부침은 국내 온라인 명품 플랫폼 산업의 성장과 쇠퇴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15년 설립된 발란은 코로나19 시기 폭발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해외여행이 막히고 백화점 방문이 제한되면서 명품 소비가 온라인으로 이동했고, 발란의 연간 거래액은 2019년 256억원에서 2021년 3150억원으로 10배 이상 뛰었다. 2022년에는 6800억원까지 확대됐다. 단기간에 외형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재개되자 소비자들은 다시 현지 구매로 돌아섰고, 고금리·고물가 국면에서 명품 소비도 둔화됐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으로 쏠렸던 수요가 분산되면서 거래액 증가세는 급격히 꺾였다.
이는 사업 구조가 지속적인 거래액 확대를 전제로 설계된 탓이라는 분석이다. 발란을 비롯한 1세대 플랫폼은 해외 부티크와 셀러를 연결하는 중개형 오픈마켓 모델을 채택했다. 재고 부담 없이 상품 수를 빠르게 늘릴 수 있어 시장이 팽창할 때는 효율적인 구조다.
하지만 수익은 결국 거래액에 연동된 수수료에서 나온다. 거래 규모가 줄어들면 실적도 동시에 악화된다. 가격과 마진을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만큼, 거래액이 꺾일 경우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수단도 제한적이다. 실제 2023년 감사보고서 기준 발란의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77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매출은 전년 891억원에서 392억원으로 56% 급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개형 모델 자체가 높은 마진 구조를 담보하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직매입을 확대할 수도 있지만, 이는 곧 재고 리스크와 자금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장 축소 국면에서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경쟁 구도 역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동일 브랜드·동일 상품을 판매하는 구조에서 플랫폼 간 차별화는 쉽지 않다. 결국 소비자는 가격 조건에 따라 이동하게 되고, 경쟁은 할인과 쿠폰, 카드 청구 할인 등 프로모션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는 거래액을 끌어올리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수익성을 갉아먹는 구조를 고착화했다.
여기에 명품 유통의 특성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명품 플랫폼의 핵심 자산은 정품에 대한 신뢰지만, 오픈마켓 구조에서는 가격·품질·배송·사후서비스를 플랫폼이 전면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가품 논란이 반복되면서 소비자 신뢰가 흔들렸고, 이는 백화점이나 브랜드 공식 온라인몰로의 회귀로 이어졌다. 신뢰를 보강하기 위한 검수·보상 비용 증가는 다시 수익성 악화로 연결됐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자사몰과 공식 파트너 중심으로 온라인 유통 채널을 재편하는 흐름도 변수로 작용했다. 브랜드가 유통 통제권을 강화할수록 중개형 플랫폼의 상품 소싱 불확실성과 협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가격 경쟁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모델이 장기적으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은 발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머스트잇은 2021년 이후 매년 100억원 안팎의 적자를 이어왔고, 2024년에도 약 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때 300억원을 들여 매입했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옥을 정리하고 공유오피스로 이전하는 등 비용 축소에 나섰다. 트렌비 역시 2024년 31억원의 적자를 내며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1세대 명품 플랫폼들의 생존력을 시험받는 시기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특히나 대형 이커머스 기업들까지 명품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경쟁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자금력과 트래픽을 갖춘 종합 플랫폼이 명품을 '버티컬 전략'으로 흡수하면서 기존 전문 플랫폼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흐름이다.
실제 롯데온의 '온앤더럭셔리', SSG닷컴의 'SSG럭셔리', 11번가의 '우아럭스', 쿠팡의 '알럭스(R.LUX)', 네이버의 '하이엔드', 지마켓의 'MXN 커머스 이태리' 등 대부분 기업은 이미 확보한 회원 기반과 결제·물류 인프라, 마케팅 역량을 활용해 명품을 추가 성장 축으로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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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다른 관계자는 "팬데믹 특수에 올라탔던 온라인 명품 플랫폼 산업이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 국면에 진입했다"며 "단순 중개 모델에서 벗어나 수익 구조 다변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추가적인 시장 이탈이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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