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완성된 건물의 발전은 제 책임입니다."
세빛섬을 3년 가까이 걸어 잠갔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만은 활용에 집착했다. 이 건물을 짓는데 5000억원이 투입되고 운영에도 연간 수백억 원이 들어가지만 '자립도'를 빠르게 육성해야 한다는 셈이 앞섰다.
박 전 시장이 DDP를 아낀 것은 아니다. 그가 시장이 돼 DDP를 넘겨받았을 당시 공정률은 50%를 넘겼음에도 '중단'과 '축소'가 검토됐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가 택한 운영안은 지금의 DDP 운영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의·전시 중심의 컨벤션을 패션쇼, 신제품 론칭이 가능한 오픈 스튜디오로 전환해 가동률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지금의 DDP는 서울시 공공 건축물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가 나는 효자 건물이 됐다. 지난해 DDP 재정 자립도는 104.2%. 2023년 첫 100%를 넘어선 뒤 3년간 평균 10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샤넬, 디올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알렉산드로 멘디니 등 국내외 저명인사들은 행사 장소로 활용한다.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의 '마지막 유작' 효과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2023년에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킨지가 세계경영진회의를 DDP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열겠다며 정부 차원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서 박 전 시장, 다시 오 시장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DDP가 완성됐다. 생각은 달랐지만 '남겨진 것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에 스스로 답을 찾은 두 사람이 보여준 책임행정의 결과다.
지방선거를 100일 앞두고 등장한 DDP 철거론에 뜨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한 여권 인사는 DDP를 '전시성 행정 대표 사례'로 규정하고 해체 뒤 그 자리에 아레나를 세우겠다고 한다. 철거와 시간, 건축 비용에 대한 걱정은 '민자 유치'로 방어했다. K팝 공연과 야구장, 축구장으로 돌리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DDP의 경제 효과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성장세와 맞물리며 과대포장됐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DDP 일대 상가의 높은 공실률을 감안하면 동대문 상권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것도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전시행정을 지적하며 또 다른 전시행정을 끌어온 것은 아닌지 구별해야 한다. 건립 과정에서의 논란과 예산 부담은 역사로 남겨졌고 운영이라는 현실 문제에 직면하는 게 우선이다. 세빛섬이 한동안 멈춰 있었던 것과 달리 DDP는 가동률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차이가 재정 성과로 이어졌다.
서울시가 줄줄이 내놓은 성과 데이터를 면밀히 살펴 '철거론'의 기반으로 삼는 게 공공토론의 시작이다. 5000억원을 쏟아부어 랜드마크가 됐고 수익까지 내고 있는데 '철거'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계산서를 보여줘야 한다. 수천억 원의 매몰비용, 이미 형성된 산업 네트워크, 관광과 마이스(MICE) 효과, 도시 이미지 가치까지 모두 숫자로 환산해보는 냉정한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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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 경쟁력 순위 '톱5' 진입을 한 단계 남겨놓고 도심 내 랜드마크를 철거하는 상황을 잠자코 지켜볼 시민은 많지 않을 듯하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이미 만들어진 시설과 인프라는 쉽게 철거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지·보수와 재생의 전략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지금은 성숙한 도시행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배경환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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