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법원, 한국 정부 승소 판정…중재절차로 환송
1600억 국고 유출 막아…배상규모 0원 가능성도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1600억원가량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이 아니란 이번 판결로 향후 의결권 행사 등 투자활동이 ISDS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가 국제무대에서 확립됐단 평가를 받는다.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이 2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개최하고 엘리엇을 상대로 한 ISDS 사건 중재판정 영국 법원 취소 소송 승소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태원 기자
법무부는 2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개최하고 엘리엇을 상대로 한 ISDS 사건 중재판정 영국 법원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은 "만약 패소했다면 국민연금의 투자 활동들이 정부 조치로 간주돼 잠재적 ISDS 소송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며 "이럴 경우 투자가 위축되고 수익성 악화까지 초래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소송의 쟁점은 '국민연금공단이 국가기관에 해당하는가'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11.1조에 따르면 ISDS는 외국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 '국가기관'의 조치로 피해를 봤을 때 제기할 수 있는 분쟁 해결 절차다. 이에 해당해야만 중재판정부가 본안 심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와 별개의 법인격을 보유하고 ▲공적연금 운용이 치안·국방 같은 국가 핵심 기능과 다르며 ▲의사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영국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연금공단이 국가기관이 아니라 판단되면 기존 논리 속 한국 정부 조치와 엘리엇의 손해 간 인과관계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이에 기존 중재판정의 유지가 어려워지기에 사건을 중재절차로 환송해 인과관계 여부를 다시 판단 받아야 한다는 것이 영국 법원의 입장이다.
승소에 따라 1600억원 상당의 정부의 배상 의무는 잠정 유보된다. 향후 재개되는 중재 절차 결과에 따라 일부 감액될 수 있다. 만약 정부의 조치와 엘리엇 손해 간 인과관계가 전부 부정되면 배상 규모는 0원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정부는 향후 구체적 취소 범위와 소송비용 분담 등 쟁점에 대해서도 만전을 기하겠단 계획이다. 엘리엇 측의 항소 제기에 대한 대비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법무부는 향후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한다. 그러면서 관계부처와 외부 전문가 및 국내외 정부대리인단과 긴밀히 협력해 남은 절차에 대응해 나가겠단 복안이다.
한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23년 우리나라 정부가 엘리엇에 약 1566억원(약 1억782만달러)을 지급하라고 판정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한미 FTA 규정을 근거로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냈지만, 각하 당했다. 하지만 2심인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해 8월 사건을 1심법원인 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고등법원은 다시 사안을 따져본 뒤 한국 정부 승소를 결정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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