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장려책, 양과 질 함께 챙겨야
정책 핵심은 '실패 이후'돼야
"진짜 창업할 사람에게 돈이 가는 게 아니라, 창업 안 할 사람에게 돈이 가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벤처투자사 임원의 말이다. 그는 정부의 창업 활성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묻는 말에 "솔직히 일종의 포퓰리즘 아닌가"라며 "지금 방식으로는 창업하면 안 되는 사람까지 창업하게 되고, 폐업률만 더 올라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를 열고 벤처·창업 열풍을 일으키기 위한 '국가창업' 정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K자형 성장' 구조를 완화하고, 창업을 새로운 사회 이동의 사다리로 삼겠다는 취지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도 공개했다. 전국 창업 인재 5000명을 발굴·지원하는 사업으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1인당 200만원의 창업 활동자금을 준다. 단계별 오디션을 거쳐 최종 우승자에겐 상금과 투자를 합쳐 10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500억원 규모의 '창업 열풍 펀드'도 조성된다.
다만 벤처투자 현장에선 지원금 구조의 왜곡부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앞선 투자사 임원은 "몇억 원짜리 과제를 받고 실험실 좀 돌리다 접는 교수 창업자, '창업은 스펙이고 목표는 삼성전자 입사'라는 학생 창업자 등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허수 창업이 늘어나면 피해는 창업 현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초기 스타트업 시장에 거품이 끼고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이 올라, 민간 투자자들이 좋은 회사를 적정 가격에 찾아 투자하기 더 어려워진다.
창업 정책의 핵심이 '첫 창업 숫자 늘리기'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창업기업 3곳 중 2곳은 5년 안에 문을 닫는다. 같은 해 창업진흥원의 '재창업 지원기업 실태조사 보고서'는 재창업 지원을 받은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이 신생기업 대비 2.4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실패 자체보다 실패를 다시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창업 실패는 여전히 신용불량, 사회적 낙인, 재기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같은 벤처 선진국에서 실패한 창업자가 값진 경험을 가진 인재로 재평가받고 다음 창업이나 투자업계 합류로 이어지는 '선순환'과는 다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국의 재창업 도전 횟수도 미국·중국의 절반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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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춘 창업자는 지원금이 있든 없든 결국 창업한다. 한정된 재원을 '누구에게, 어떤 구조로' 배분할지에 대한 설계가 더 정교해져야 한다. 필요한 것은 실패 이력이 신용에 과도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 개선과 재도전 창업자에 대한 실질적 보증 확대, 그리고 경험 있는 재창업자와 민간투자를 잇는 연계 강화다. 더 많은 창업자가 아니라, 실패에서 배운 창업자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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