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만에 문민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안규백 장관은 취임식에서 군(軍)의 사기를 강조했다. 안 장관은 "지난 상처를 딛고 제복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라며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계엄으로 인해 군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빛이 달라졌다. 40여년에 걸쳐 군부 통치 트라우마를 극복해 온 국민 입장에서 군이 또다시 정치에 개입한 건 민주화 역사를 통째로 갈아엎는 듯한 충격이었다. 장병들은 그런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국민 보호나 대북대비태세 유지를 위한 훈련에 나섰지만 움츠러들었다. 장교들은 퇴근할 때마다 군복 대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당당히 제복을 입고 퇴근하는 장교의 모습은 사라졌다.
올해도 후유증은 여전하다.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던 장군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파면이나 해임 징계받은 장군은 총 14명에 달한다. 계급장에 놓인 별의 숫자만 31개에 달한다. 징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대장으로 진급한 주성운 지상작전사령관과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이 조사를 받고 있다.
주 사령관은 계엄 당시 1군단장으로 계엄 관련 의혹이 있어 수사를 의뢰했다. 비상계엄 당시 강 총장이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으로 계엄사 구성에 사실상 관여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강 총장에 대한 수사는 의뢰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강 총장이 관련 진술이나 자료 요청에 적극 협조했기 때문이라며 애써 감싸는 모양새다. 하지만 대장들이 나락처럼 나가떨어지자 장병의 사기는 휘청거렸다. 군 내부에서는 장군으로 진급시키고 옷을 벗길 바엔 인사를 늦추더라도 옥석을 가려 지휘 체계를 다졌어야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훈련할 명분도 사라질 판이다. 정부는 9·19 군사합의 복원 카드를 들고 나섰다. 최근 불거진 민간 무인기의 대북 침투 사건, 윤석열 정부 때의 대북 무인기 공작 등을 이유로 비행금지구역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면 군단급 이하 무인기를 띄우지 못한다.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 'KN-25'를 전방에 배치하고 기습적인 대량 집중 공격을 예고한 상황도 지켜봐야만 한다. 미국 정보자산에 의존해야 하지만 협력은 미지수다.
사격훈련도 위태롭다. 9·19 남북군사합의서로 제한된 국내 사격장은 수두룩하다. 스토리사격장(경기도 파주시), 천미리사격장(강원도 양구군), 적거리사격장(경기도 연천군), 칠성사격장(강원도 화천군), 송지호사격장(고성 사격장·강원도 고성군) 등이다. 지상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5㎞ 안의 구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동해안 송지호 사격장도 마찬가지다. 송지호 사격장의 최대 사거리는 80㎞다. 230㎜급 차기 다연장로켓(MLRS) 천무를 실사격할 수 있는 유일한 훈련장이다. 군은 2016년과 2022년에 북한 도발을 견제하기 위해 송지호 사격장의 실사격 훈련을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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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에 가담한 핵심 군인들을 가려내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그 화살이 우리 군 절대다수인 비계엄군 50만명의 정상적인 임무 수행까지 망설이게 하면 안 된다. 군 지휘부에 대한 불신은 군 전반의 지휘 체계 약화로 이어진다. 안 장관은 취임할 당시 언급한 군 사기 진작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재촉할 때 국방만큼은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튼튼한 안보가 있을 때 대화도 가능하다.
양낙규 군사 및 방산 스페셜리스트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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