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90명 무투표 당선
서울도 21.4% 투표 안 거쳐
양대정당 나눠먹기 결과 지적도
"무투표 당선 문제는 일종의 정치권 담합 문제에요. 주민 투표권을 뺏는 겁니다."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 사태'가 재현될 것인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무투표 당선이란 후보자 수가 의원정수를 넘지 않거나, 후보가 1인일 때 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선거일에 그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뽑으려는 사람만큼만 후보가 나설 경우 선거를 거치지 않고 당선시키는 것이다.
2022년 지방선거(8회)에서는 490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무투표는 7회 지방선거에서만 해도 89명에 그쳤지만, 대거 늘었다. 일부 투표구에서는 투표용지 숫자가 다른 곳과 달랐는데, 무투표 당선 때문이었다. 통상 지방선거에서는 7차례 투표를 해야 하지만, 무투표 당선의 경우 투표용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대구 중구의 제1선거구 유권자들은 4장의 투표용지만 받기도 했다.
무투표 당선, 무엇이 문제인가
무투표 당선은 단순히 일꾼을 뽑는 과정의 생략 정도로만 볼 수 없는 '민주주의 또는 지방자치제도의 위기'로 여겨진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관련 보고서에서 "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당선되면서 유권자의 선택 기회가 사라지면 장기적으로 대표자에 대한 유권자의 통제 기능이 상실되고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심화될 수 있다"며 "무투표당선은 투표를 통한 공약 등에 대한 사전 평가와 정책 업적에 대한 사후 평가가 제한되고, 나아가서는 당선자의 자질 문제, 당선 이후에는 대표자의 책임성 저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무투표 당선의 경우 후보자임에도 투표용지는 물론 선거 벽보, 공보물 등이 생략된다. 지역 주민들로서는 4년 만의 지방선거임에도 '어떤 후보인지', '어떤 공약인지' 알지 못한다. 범죄 전과나 세금 체납이 있더라도 알 길이 없다. 무투표 당선 시 선거운동 기간에 선거운동 자체가 불허되는 탓에 공보물 등을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 수도 없다. 일종의 선거 비용 등을 아끼기 위한 일환이지만 유권자의 투표권은 물론 후보자를 알 권리 역시 사실상 배제된 것이다.
영남·호남 지역 패권 정당과 수도권 등 거대양당 담합의 결과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무투표 당선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선거의 기본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투표 당선 문제가 단순히 지역 일꾼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발생하는 일일까. 현실은 다르다. 최근 불거진 공천 헌금 논란 등이 제기될 정도로 지방의회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는 자리다. 그럼에도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문제와 함께 공천과 선거 제도가 맞물린 결과다.
통상 무투표 문제는 호남이나 영남과 같이 지역 정치색이 강한 지역의 문제로 여겼지만 상황은 더 복잡하다. 8회 지방선거에서 당선인 대비 무투표 당선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라북도(24.5%)였으나, 서울이 21.4%로 뒤를 이었다. 서울 지역에서만 지방선거 당선인 가운데 5분의 1가량이 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뽑힌 것이다.
무투표 당선이 늘어난 것은 복합적인 결과다.
영호남의 경우 지역 내에서 특정 정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해, 후보자들이 도전 자체를 포기한다. 더욱이 특정 정당 공천 자체가 일종의 당선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무소속 등의 도전도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이 탓에 호남에서는 민주당, 영남에서는 국민의힘 후보자의 무투표 당선 사례가 다수 나온다.
수도권 양상은 또 다르다. 서울시의 경우 무투표 당선자가 121명인데 시의회 의원은 2명, 구의회 의원은 109명, 기초비례의원이 10명이다. 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시 154개 구의회의원 선거구 중 2인 선거구(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지역)는 98개인데, 이 중 50개 선거구 100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고 했다. 3인 선거구 50개 가운데 3곳에서도 무투표 당선이 나왔다. 입법조사처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선거구 크기와 관계없이 한 표만 행사하고, 당선자는 득표 순위에 따라 결정된다"며 "2인 선거구에서 정당이 후보를 복수공천하게 되면 같은 소속정당 후보들의 표가 나눠지는 등 불확실성이 증가하게 되므로, 양대 정당이 후보를 한 명씩 공천하게 되고 이는 결국 무투표 당선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양대 정당이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여론 지형을 판단한 뒤 한 명의 낙선자도 없도록 나눠 먹기를 한 결과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방식의 선거 결과가 지방자치 제도를 망친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일단 지방의원들이 유권자보다는 공천권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의회 구성원 자체도 지역발전을 위한 일꾼보다는 이권을 노린 인사들이 정당 공천을 통해 '한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지방 의회가 공천권자나 유명세 등에 힘입어 일꾼 대신 이해당사자로 채워질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무엇을 바꿔야 하나
국회 정개특위 위원인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수도권에서 문제의식을 가진 지역위원장 등이 상당수 있지만, 지역위원장 의지에만 다 맡겨둘 수 없다"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담합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몇몇 정치인의 결단 대신,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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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일단 기초선거구의 경우 2인 선거구를 없애고 3인 이상 선거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의도하든 아니든, 선거에 지지 않기 위해 1:1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 지방선거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던 하승수 변호사는 최근 국회 한 토론회에서 "광역지방의회 선거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의 등가성을 높여 다양한 정치세력 간 경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이른바 사표(死票)를 막고, 지역 내에서도 정당 간 경쟁 구조를 촉진할 수 있게 하자는 의미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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