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텀 메모리 경쟁으로 산업 지형도 변화
"정부 주도 지원 사업 뒷받침 돼야"
향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패권은 커스텀 메모리 경쟁에 달려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AI 생태계를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아성을 뛰어넘으려면 국내 기업들이 단순히 반도체 주문 제작을 넘어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제공하는 '설계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비전도 제시됐다.
이강욱 SK하이닉스 패키지개발담당 부사장은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 AI 서밋의 토론 세션에서 "이제 HBM 시장은 단순히 업계 표준 스펙에 따라 제작되는 '상품'(commodity)을 넘어 고객 맞춤형의 커스텀 사업으로 향하고 있다"며 "SK그룹 역시 공급사의 입장에서 고객사가 겪는 문제점들을 파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코리아 2026' AI 서밋의 토론 세션에 참여한 패널들의 모습. 왼쪽 두번째부터 유회준 카이스트 교수,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 이선길 도쿄일렉트론코리아 CTO,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손교민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마스터, 이강욱 SK하이닉스 패키지개발담당 부사장. 김진영 기자
SK하이닉스가 '커스텀 고대역폭메모리'(cHBM) 시장에서 꺼내든 카드는 HBM 'BTS'다. 고객사의 입맛에 맞게 B(대역폭)·T(열 방출)·S(면적 효율) 등 각각 성능·전력 효율·집적도에 특화된 HBM을 뜻한다. 이 부사장은 "고객들이 각 영역에서 굉장히 특화된 HBM을 요구하고 있다"며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을 통해 여러 플랫폼을 준비하고 고객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cHBM은 경쟁사인 삼성전자도 주목하고 있는 시장이다. 이날 세미콘 코리아 기조연설에 나선 송재혁 삼성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다이투다이 인터페이스 IP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더 많은 대역폭을 확보할 수 있는 커스텀 HBM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담당하는 일정 포션을 베이스 다이가 담당하게 하는 '삼성 커스텀 HBM'도 생각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이 부사장은 "메모리 업체 입장에서 기존의 소품종 대량 생산 체제를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큰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라며 "커스텀 메모리를 수행할 수 있는 오퍼레이션부터 상품 기획, 개발까지 일련의 프로세스가 발맞춰 변화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손교민 삼성전자 D램설계팀 마스터 역시 "메모리 반도체를 개별화할수록 일부 고객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커진다"며 "커스텀 메모리는 분명한 트렌드고 향후 가속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으나 자리 잡기까지 여러 제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AI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유회준 카이스트 AI반도체대학원 원장은 "중국은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우리나라 역시 정부 주도해 전문 인력과 벤처를 조직적으로 양성하고 시장과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학계와 산업계의 유수한 인력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선길 도쿄일렉트론코리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도 좋은 인재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몰리면서 메모리 부문은 잘 성장했지만, 상대적으로 성장이 더딘 분야도 있다"며 "학교에서만큼은 너무 특정 반도체 분야에만 몰두해 가르치기보단 사회와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역할을 포괄적으로 가르치는 정책적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 뜨는 뉴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을 보면 대부분 멀티모달 기반의 에이전틱 AI를 추구하는데 국내 AI 기업들의 대부분은 LLM(대형언어모델) 기반 생성형 AI에 머물러 있다"며 "구글이 에이전틱 AI에 박차를 가하는데 1~2년 후면 국내 기업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문화, 쇼핑, 교육 등 AI 서비스 분야에도 AI 반도체 못지않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