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유족 손 들어주며 파기환송
5·18 민주화운동 피해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권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유모씨 등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사건은 1990년대 제정된 '광주민주화보상법' 조항에서 비롯됐다. 해당 법률에는 관련자나 유족들이 보상금을 받은 경우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다고 보는 '화해 간주'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유족들은 별도의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2021년 해당 조항이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까지 막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유족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했는데, 정부는 보상금 지급을 결정에 동의한 때부터 시작한 3년의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1심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위로금은 사회보장적 성격의 금원일 뿐 정신적 손해배상금인 위자료와 구분된다"며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3년의 단기소멸시효는 늦어도 관련자들이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을 받은 날부터 진행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원고들의 고유 위자료 채권은 이미 시효로 소멸했다"고 판시했다.
대법관 11명은 다수의견을 통해 "원고들에게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있기까지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존재했다"며 "위헌결정을 통해 위자료 청구권 행사에 대한 장애사유가 비로소 제거됐다"고 판시했다.
또 "국가배상제도의 목적과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유가족에게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에 자기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보상금 지급결정일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없다"고 짚었다.
한편 오경미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국가인 피고가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노태악 대법관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가족의 고통은 충분한 배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이들에 대한 구제는 입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산재사고와 관련한 공단의 보험금 반환(구상권)에 관한 판례도 뒤집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근로복지공단이 지게차 운전기사와 지게차 임대인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공단 측 패소로 확정 판결(파기자판)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에서 산재보험법 87조 1항 본문의 '제3자'는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고 해석해왔다. 건설기계 임대인과 그 근로자는 재해근로자와 '보험관계'가 없으므로 공단이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전합은 해당 조항의 '제3자'를 판단할 때는 '보험관계'가 아니라 '사업장에 내재된 같은 위험을 공유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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