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업 투자 비중 3년 만에 반토막
'인내자본' 기능 무색…단기 성과관리 치중
"정책금융 비중 큰 한국, 과감한 투자 어려워
시장 침체기에 스타트업·벤처 성장을 위해 선도적으로 위험을 떠안는 '모태펀드(Fund of Funds)'의 역할이 다시 부각됐지만 업계에선 모태펀드가 '장기 인내자본'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정책금융 규모가 커질수록 운용 구조는 위험 회피와 단기 실적 관리에 맞춰지는 모순이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망하지 않을 곳부터 찾는다"…갈수록 쪼그라드는 초기 투자
모태펀드란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벤처캐피털(VC) 등이 운용하는 펀드에 출자하는 간접투자 펀드다. 특히 국내에서는 정부가 특정 산업 및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목표로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상위펀드 성격이 강하다. 딥테크(혁신기술) 분야는 상용화까지 불확실성이 큰 데다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기술 검증과 시장 형성까지도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벤처투자 업계의 보수화 흐름이다. 많은 VC가 보다 빠른 성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검증된 기업으로 몰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VC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신규 결성된 257개 벤처투자 조합의 총 약정금액은 6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2% 증가했다. 하지만 피투자 기업의 업력별 신규투자 비중을 보면 창업 초기 기업 투자는 14.1%에 그쳤다. 2022년 29.6%를 기록했던 초기 투자 비중이 불과 2년 만에 반토막 난 셈이다. 반면 중기와 후기 투자 비중은 각각 41.5%, 44.4%까지 치솟았다.
VC 업계는 출자자의 자금으로 펀드를 굴리는 만큼 투자 환경이 악화할수록 단기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크다는 입장이다. 차기 펀드 결성을 위해 단기 성과가 급한 벤처펀드운용사(GP)의 생존 압박과 공공기관 특유의 손실 방지에 급급한 정책금융 LP의 보수성 등이 종합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한 중견 VC 대표는 "많은 VC가 GP 자격을 따내면 주목적 투자에 할당된 비율만 형식적으로 채우고, 나머지 자금은 전부 3~4년 만에 기업공개(IPO)로 갈 수 있는 시리즈C 단계 이후의 투자에 주력한다"고 전했다. 그는 "제대로 초기 투자를 하면 엑시트까지 8~10년이 걸리기 때문에 출자자들과 신뢰 관계를 유지하려면 재무제표상 매출과 이익이 나는 기업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민간 주도로 발전한 美…한국은 초기부터 정부주도형 발전"
모험자본 출자자 다변화를 강조하는 의견도 나온다. 일부 정책금융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모험자본의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진단에서다.
실제로 미국에선 정부 측 벤처투자자가 전체 벤처투자 건수의 3% 미만으로 관여한다. 정부 지원 VC 프로그램 규모가 상대적으로 매우 작고, 프로그램 운용에서도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집행한다. 민간 주도로 시장이 발전한 미국 등과 달리 국내 VC 시장은 초기부터 정부주도형으로 발전해왔다. 정책 금융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배경이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자금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으면 상대적으로 특정 유망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형평성 고려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라며 "국내 VC 시장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건당 투자금액(2024년 기준 약 14억원) 및 기업당 투자금액(약 25억원)은 소규모에 머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벤처투자에 대한 출자자 구성이 다양할수록 출자금의 목적 및 성격 또한 다변화될 수 있다"며 "예컨대 연기금 및 대학 기금은 장기수익률에 초점을 두고 투자하거나 재단은 특정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선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벤처생태계 출자자 다양화 필요…"모험자본 정체성 확립 병행돼야"
한편 올해 중소벤처기업부 모태펀드 출자예산은 82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3200억원가량 확대됐다. 당초 정부는 '연 40조원 벤처투자 시장 육성'과 '제3의 벤처붐'을 목표로 모태펀드를 1조1000억원 규모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실제 예산은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을 포함한 범정부 모태펀드 예산은 1조5700억원(전년 대비 약 60% 증가)으로 확대됐지만 이 역시 기존 정부 계획에서 4300억원가량 삭감됐다.
정부는 향후 모험자본 공급 등 생산적 분야로 자금 흐름을 촉진하고, 보다 다양한 주체가 모험자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종합투자계좌(IMA) 도입 및 벤처 투자 세제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정부·민간의 자금 유입과 동시에 모험자본 본연의 역할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성 은행권 대출이 어려운 고위험 기술 분야에 '인내자본'을 공급하고, 기업과 운용사가 리스크를 공동 부담하며 성장의 결실을 나누는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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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대형 VC 관계자는 "(일반 투자자가 참여하는) BDC 등이 도입돼도 초기 투자의 본격적인 활성화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조직이다. 현재 분위기에선 개인을 비롯한 다양한 주체가 돈을 넣어도, 상당 부분은 안전자산에 투자되고 초기 투자로 흐르는 돈은 일부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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