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진료비만 20% 인상"…적자 보전용 '청구서' 논란
병원장 입에서 처음 나온 '진료비 인상'… 도민 동의 없는 '기습 청구서'
"비싸진 만큼 좋아지나?"…구체적 로드맵 없는 '장밋빛 공약'만 난무
편집자주
행정 당국과 병원 책임자들도 중증 환자 유출 불가피성을 시인한 가운데, 인프라와 필수 의료진 없이 진료비만 인상되는 구조적 모순을 이번 연재를 통해 알아본다. 특히 의료 기술 이외에 중증 환자의 심리적 안정감과 인권이 실종된 진료 현장을 지적하며, 병원 적자 보전용 승격이 아닌 ‘서울로 갈 수 없는 약자’를 위한 실질적 의료 능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새벽부터 북새통"… 전국서 몰려든 환자들 서울의 한 주요 상급종합병원('빅5') 진료 대기실이 이른 아침부터 환자와 보호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다. 이곳에는 제주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KTX와 비행기를 타고 올라온 원정 진료 환자들이 상당수다. 환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감수하며 서울로 몰리는 이 북새통은, 지역 의료 불균형과 수도권 쏠림 현상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다. 박창원 기자.
제주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가시화되면서 도민들이 마주한 가장 큰 충격은 '비용'이다. 그러나 정작 이 비용 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공론화 과정은 전무했다. 도정과 병원이 '의료 독립'이라는 구호에 취해 있는 사이, 도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20% 오른 진료비 청구서를 받아들 처지에 놓였다.
병원장 발언으로 처음 드러난 '비용 폭탄'… "왜 미리 말 안 했나"
상급종합병원 지정 시 진료비가 상승한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건, 지난주 최국명 제주대병원장의 기자간담회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제주도청과 정치권은 "상급병원 지정이 도민의 염원"이라고 홍보해 왔지만, 정작 그 대가로 도민들이 짊어져야 할 '외래 본인부담률 60% 상향', '기본 진찰료 100% 부담'이라는 현실은 수면 아래 감춰져 있었다.
도민사회에서는 "서비스가 좋아진다는 말만 했지,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은 쏙 뺐다"며 "사실상 기습적인 가격 인상 통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재인 의료 체계를 개편하면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인 도민의 '지불 의사'와 '동의'를 묻는 절차는 실종됐다.
"점심시간 미룰 테니 바로 합시다"… 4기 암 환자가 도망친 이유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가성비', 즉 의료 서비스의 질과 태도다. 본지 기자가 직접 겪은 사례는 '환자 중심'이 실종된 제주 의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2년 전, 기자는 제주대병원에서 CT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다. 젊은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대수롭지 않게 "비인두암입니다"라고 통보했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에 환자가 질환을 이해하기도 전, 의사는 갑자기 조직검사를 제안했다.
"점심시간을 좀 미룰 테니, 바로 옆방에서 바로 합시다. 비인두는 코안 쪽에 있는 것이라 바로 조직을 좀 떼어내고, 목에 전이된 부분은 침습으로 찔러서 바로 하자"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를 받고 환자의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충분한 설명도 없었다. 마치 기계 부품을 다루듯, 자신의 점심시간을 할애해 줄 테니 얼른 해치우자는 태도로 느껴졌다.
그 순간 기자는 치료가 아닌 '강요'를 느꼈다. 공포감이 엄습했고, "여기서는 죽겠구나"라는 본능적인 위기감에 옆에 있던 배우자를 병원에 놔둔 채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 길로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빅5')으로 향했다. 그곳의 대응은 천지 차이였다. 의료진은 "비인두암은 코 깊숙한 곳의 희귀암이라 조직검사는 곧 수술이고 신중해야 한다"며 '전신마취' 수술을 준비했다. 검사를 위한 입원 전에는 '전담 간호사'가 치료 과정과 준비 사항을 상세히 설명해 줬다.
이후 기자는 4기 판정을 받았다. 생존율을 장담할 수 없는 위중한 상태였다. 만약 제주에서 준비 없이, 마취도 없이 고통 속에 검사받았다면, 그 트라우마로 치료 의지마저 꺾였을지 모른다.
4기 암 환자를 '점심시간 짬 내서' 처리하려던 병원. 이런 후진적인 시스템과 마인드가 그대로인데, 간판만 '상급'으로 바꾼다고 도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강한 의문이 든다.
간판보다 중요한 건 '신뢰'와 '완치' 제주 상급종합병원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도민들이 서울행 비행기 대신 제주 병원을 선택하는 것은 '강요'가 아닌 '신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한 암 환자가 제주 의료진의 케어를 받으며 평온하게 웃고 있는 이 모습이, 단순한 상상이 아닌 제주의 내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AI 생성 이미지)
"서울 갈 환자는 존중하고, 제주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해야"
병원 측은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통해 "중증 환자를 도내에서 다 치료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허상에 가까운 공약'이라고 지적한다. 기자의 사례처럼 서울의 거대한 의료 시스템과 인적 인프라를 단기간에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행정 당국이 인정했듯, 초고난도 희귀 질환이나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한 중증질환, 그리고 거동이 가능해 원정 진료를 선택하는 영역은 환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억지로 붙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신 제주는 섬 특성상 전원이 어려운 지리적 환경을 고려해서 '제주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면 죽는 병'에 집중해야 한다. ▲뇌혈관·심장 응급 수술 ▲중증 외상 ▲고위험 산모 등 서울까지 갈 시간이 없어 생명을 잃는 필수 의료 분야만큼은 서울보다 더 완벽하게 갖추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솔직하게 제주도민에게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따른 진료비 부담을 알리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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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 지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막연한 장밋빛 공약 대신, "어떤 환자는 서울로 보내고, 어떤 환자는 반드시 제주에서 살릴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로드맵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번 지정은 도민들에게 '희망 고문'이자 '비싼 청구서'로 남을 것이다.
호남취재본부 박창원 기자 capta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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