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자유주의 체제의 급속 붕괴
초강대국 중심 힘의 논리 재등장
노골적 국익 추구 트럼프식 외교
힘만 남은 질서는 美 신뢰 흔들뿐
한 초강대국이 취약한 법적 근거 위에서 마약 운반선을 공격하고, 한밤중에 외국 정상들을 납치하고 있다. 그린란드에서 우크라이나,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강대국들은 약소국 이웃의 국경을 다시 그리거나, 최소한 다시 그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전략적 경쟁이 격화하면서 국제법과 군비통제 관련 협정은 무너지고 있고, 침략을 억제하던 장치들이 약화하면서 무력 분쟁은 빈번해지고 있다. 홍해에서 서태평양에 이르는 주요 해상 교통로에서는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마저 도전받고 있다. 규칙에 기반을 둔 무역 질서는 점점 과거의 유물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증상은 다양하지만, 병의 정체는 하나다. 전후(戰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해온 세계 질서는 1945년 이후 형성된 체제에서 점진적으로 이탈하고 있다. 다만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규칙의 힘은 약해지고, 순수한 힘의 논리가 더 크게 작동하는, 훨씬 거칠고 무자비한 시대다. 그리고 한때 그 질서를 떠받쳤던 초강대국이 이제는 그 체제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이익을 얻으려 드는 시대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미화할 필요는 없다. 어느 시대든 분노를 부르는 시간과 잔혹 행위, 위선은 존재해왔다. 과테말라와 이란, 칠레의 사례만 봐도 미국이 언제나 규칙을 철저히 준수해온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 이후 수십 년은 상대적으로 더 인간적이고 계몽적인 시기였다.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이 대체로 해양의 자유, 무력에 의한 영토 정복 금지와 같은 규범을 보호하는 데 애썼고 동시에 동맹과 각종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상당한 수준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하나 있다. 1816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 국가의 4분의 1은 어느 시점엔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국가의 소멸(state death)'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됐다. 이 프로젝트의 동력은 이타심이 아니라 자기 이익이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것이 앞선 수십 년 동안 두 차례나 세계를 뒤덮었던 무정부적 혼돈을 억제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은 군사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동맹체계를 구축하고, 그 틀 안에서 무력 정복 금지나 항행의 자유 같은 규범과 자유주의적 가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를 평화와 번영, 그리고 자유의 확대가 함께했던 황금기로 평가할 것이다. 다만 그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임은 한쪽에만 있지 않다. 러시아와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국이 주도해온 규칙, 특히 민주주의를 선호하고 권위주의 국가들의 세력 확대를 꺼려온 미국의 입장에 반발해왔으며, 자국의 힘이 세질수록 그 규칙을 되돌리려고 했다. 이스라엘에서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위협에 처한 민주국가들 역시 국제법이나 군비통제보다 완충지대와 지뢰가 자신들을 더 잘 지켜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세계화의 과잉과 약탈적 성격을 띤 중국의 부상은 세계무역기구(WTO)를 무력화시켰다. 이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마저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전후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다시 따져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 늘 그렇듯, 사안은 단순하지 않다. 국제질서를 경멸해온 대통령이면서도 그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파괴함으로써 핵확산 억제에는 분명한 타격을 가했다. 또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전격 체포함으로써 카리브해의 잔혹한 마약 독재자를 끌어내렸다. 예멘의 후티 반군을 상대로는 짧지만 강경한 군사작전을 벌여 해상 교역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국제 질서를 유지하려면 힘이 필요하며, 실제로 미국의 최전선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따라 군사비를 증액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와 같은 노골적인 국익 추구를 군함 외교로 추구하고 있다. 그는 무역 협정을 파기하고 기존의 국경선을 위협해 왔다. 민주주의 증진과 인권은 용병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강제력과 권력이 세상을 움직인다. 이것이야말로 태초 이래 세계를 지배해온 철의 법칙이다." 백악관 실세이자 부비서실장인 스티븐 밀러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인식은 핵심을 놓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정세를 얼마나 과도하게 강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규범이 느슨해지고 경쟁이 노골화된 세계가 가장 사납고, 강력한 행위자에게 유리하다고 본다. 강대국들이 각자 인접 지역을 세력권으로 나눠 갖는 구도가 된다면, 서반구 전체를 영향권으로 둔 미국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적인 전략은 언제나 같았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약육강식의 경쟁 무대에서 번영할 준비가 돼 있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워싱턴이 더이상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지할 의지가 없거나, 커지는 도전에 맞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차라리 전리품의 가장 큰 몫을 챙기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계산이다.
다만 그것은 단기적으로만 그렇다. 장기적 결과는 순탄치 않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요하게 위협해온 것처럼 미국이 그린란드를 실제로 차지한다면 미국 자신의 영향력과 전략적 도달 범위를 가장 크게 확장해주는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흔들릴 수 있다.
또 미국이 '강자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약자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고대 그리스 멜로스식 논리(힘이 정의를 대신한다는 사고)를 행동 원리로 삼는다면 미국의 힘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신뢰나 명분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해온 질서가 무너진 뒤에도 미국의 힘과 번영이 살아남고, 더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트럼프식 행보대로라면, 그 판단이 빗나가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는 미국 사회와 다음 정부가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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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The World Order Is Becoming More Cutthroat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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