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데뷔해 170편 남긴 '영화계의 얼굴'
1980년대 리얼리즘·1000만 영화 주역
혈액암 투병 끝내 극복 못 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국민 배우' 안성기씨가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한국영화배우협회는 고인이 이날 오전 서울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사인은 기도 폐쇄에 따른 뇌사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엿새간 이어진 의식불명 상태에서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2019년 혈액암을 진단받고 투병하면서도 최근까지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치며 복귀 의지를 다졌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고인의 69년 연기 인생은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1952년생인 고인은 만 5세였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이후 '하녀(1960)' '돼지꿈(1961)' 등 70여편에 출연하며 '천재 아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1959년 '십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해외 영화제 연기상 수상 기록이다.
안성기
1968년 '젊은 느티나무'를 끝으로 그는 잠시 은막을 떠났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해 학업을 마쳤고, 학군단(ROTC) 장교로 군 복무를 이행했다. 제대 후 잠시 무역회사에 다니며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기도 했다.
그를 다시 영화판으로 부른 건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다.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을 맡은 고인은 어눌하면서도 순박한 소시민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1980년대 한국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끄는 기수가 됐다.
전성기는 화려했다. 배창호 감독과 콤비를 이뤄 '꼬방동네 사람들(1982)'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임권택 감독과는 '만다라(1981)'를 통해 연기의 깊이를 더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시기의 안성기를 두고 "독재 정권 시절, 억눌린 청춘과 소시민의 애환을 대변하는 가장 현실적인 페르소나였다"고 평가했다. '칠수와 만수(1988)' '성공시대(1988)' 등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문제작들도 그의 얼굴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됐다.
영화 '실미도' 스틸 컷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변신을 멈추지 않았다.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에서는 지식인의 고뇌를 연기했고,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에서는 능청스러운 비리 형사로 분해 코미디 연기까지 섭렵했다. 2003년에는 강우석 감독과 다시 만나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실미도'의 흥행을 견인했다. 2012년 '부러진 화살'에서는 깐깐한 수학 교수 역을 맡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평생 170여편의 작품을 남긴 그는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주요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십 차례 휩쓸었다.
스크린 밖에서도 그는 '어른'이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바른 품성으로 연예계에서 드물게 '안티 없는 배우'로 통했다. 영화계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2000년대 초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을 이끌며 거리로 나섰고, 굿다운로더 캠페인 본부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 등을 역임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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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린다. 발인은 오는 8일, 장지는 미정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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