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운전능력 진단시스템 시범 운영
75세 이상 어르신들 운전능력 첫 수치화
'조건부 면허제' 도입 위해 데이터 축적
"아이고, 내가 카투사 운전병까지 했는데 말이야…. 58점이 뭐람."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강서운전면허시험장 3층 고령자교육장에선 아쉬움 가득한 탄식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왕년에 '운전 좀 한다'는 소리를 듣던 베테랑 할아버지에게도 운전능력 진단시스템은 냉정했다. 나모씨(84)는 '미흡'이라 적힌 운전능력 평가 결과지를 손에 쥐고 "사고 없이 평생을 지냈는데 최근 주차하다 차를 긁고는 '아차' 싶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경찰청과 한국도로교통공단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실제 운전능력을 가상현실(VR)과 실주행으로 진단하는 '운전능력 진단시스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강서시험장을 시작으로 서부·도봉 등 전국 19개 시험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존의 앉아서 듣기만 하던 2시간짜리 이론 교육 대신, 실제 운전대를 잡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수치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7명의 어르신은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자였다. 실제 차량을 모는 '실차 주행'과 VR 기기를 이용한 '가상 주행' 중 하나를 골라 테스트에 임했다. 운전자가 7~8분간 주행하는 모습이 기능시험장 내 본부로 실시간 송출되면 기계가 운전자의 전방 주시, 차로 이탈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점수를 매긴다.
실차 진단은 곡선 주행, 연산 문제 등 8개 과제로 구성됐다. 실제 사고의 원인이 되는 중앙선 침범 여부나 신호·돌발 상황 반응 속도, 인지 능력 등을 평가하는 데 중점을 뒀다.
테스트가 시작되자 "깜빡이를 제때 켰다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나오네" "나도 모르게 자꾸 속도가 빨라져" 등 곳곳에서 투덜대는 목소리가 나왔다. '40년 무사고'를 자랑하던 김경수씨(79)도 돌발 상황 대응이 늦어 49점을 받는 데 그쳤다. 이날 실차 테스트에 참여한 어르신 4명 중 3명이 '미흡'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1명은 긴장한 탓에 경로를 이탈해 점수 측정조차 불가능했다.
3명은 VR을 택했지만 반응이 엇갈렸다. VR 진단은 다양한 환경을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는 대신 현실성이 떨어진다. 김영환씨(84)는 "병원에서 신체 나이 68세 판정을 받을 만큼 건강한데 VR 화면은 어지럽고 어색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새로 도입된 운전능력 진단시스템은 ▲미흡 ▲보통 ▲양호 등으로 결과를 구분한다. '미흡' 판정을 받는다고 당장 면허를 반납하는 건 아니지만, 경찰은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위한 데이터를 축적할 방침이다. 인지 능력이 저하된 운전자에게 야간주행 금지나 고속도로 주행 제한, 안전장치 장착 등을 조건을 달아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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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경찰청 운전면허계장은 "이동권 보장을 위해 맞춤형 택시나 수요 응답형 버스 등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농어촌 등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올해 시범 운영을 통해 데이터를 객관화하고 표준화해, 도저히 안 되는 분들은 면허 취소가 불가피하겠지만 최대한 안전이 확보된 환경에서 운전하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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