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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손편지가 30년을 버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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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이사장 인터뷰
30년 전 아들을 잃은 뒤 시작된 한장의 편지
세월호·이태원, 무안공항까지 이어진 추모
계단 채운 수천장 손글씨, 말 대신 남긴 애도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이사장은 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잠시 말을 멈췄다. 어떤 계기로 이 길에 들어섰는지를 떠올리는 순간, 자연스럽게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30여 년 전 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지금도 크리스마스처럼 가족의 웃음이 가득한 날이면 저절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여러 차례 잠겼다.

“한 장의 손편지가 30년을 버티게 했다”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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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이를 잃은 순간을 "막막했다"는 말로 기억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던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고 했다. 그 고민의 끝에서 떠올린 것이 손편지였다. 손편지를 쓰는 행위가 자신을 버티게 했고,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살아올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손편지를 두고 "내게는 생명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그는 현장을 찾았다. 배 안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자신의 아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포스트잇을 들고 아무런 계획 없이 현장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슬픔 앞에서 손편지는 그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의 애도였다.

“한 장의 손편지가 30년을 버티게 했다” 무안공항 계단과 난간을 채운 손편지들. 유가족과 시민들이 남긴 짧은 글들이 한 장씩 겹쳐 붙으며 추모의 공간을 이뤘다.
“한 장의 손편지가 30년을 버티게 했다” 지난 1월 18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계단이 '추모의 계단'으로 꾸며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손편지가 붙어져 있다. 송보현 기자

이번 제주항공 참사 직후에도 그는 손편지 재료를 직접 챙겨 무안공항으로 갔다. 처음에는 글을 쓸 공간도, 붙일 곳도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복받치는 마음에 계단에서 "손편지를 쓰자"고 외쳤고, 그 말에 이끌리듯 한두 명씩 사람들이 다가와 자신의 사연과 아픔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단은 자연스럽게 추모의 공간이 됐다. 그는 이후 손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나하나 투명 비닐에 담아 보관했다. 수천 장이 쌓였지만 정확한 개수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 편지들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손편지가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경각심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동시에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작은 치유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비슷한 결의 편지들이 계단을 채웠다. 하늘에 있는 가족에게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거나, 꿈에서라도 한 번만 얼굴을 보여달라고 적은 글도 있었다. 평생 곁을 지켜준 어머니에게 고맙고 행복했다고 전하며, 다음 생에서는 자신이 어머니의 부모가 되겠다는 약속을 남긴 편지도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이 생일이라며, 그날만큼은 꼭 보고 싶다고 적어 내려갔다. 이사장은 그런 편지들이 한 장씩 쌓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한 장의 손편지가 30년을 버티게 했다” 12·29 여객기 참사 희생자 유가족 등이 지난달 1일 서울 용산역 앞에서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촉구'등을 주장하며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으로 그는 참사로 부모를 잃은 딸의 손편지를 떠올렸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그는 식장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지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이 이사장은 그 짧은 편지를 열 번 넘게 반복해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들과의 대화도 깊었다. 자신 역시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였기에,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함께 울고, 서로를 안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아들이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사고가 있었던 3월이 돌아올 때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도 했다. 숨이 막히고, 걷기조차 힘들 만큼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이런 고통은 가족을 잃은 사람만이 안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지금도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적고, 엄마와 다퉜다는 이야기를 적어 보내면 꿈에서 아들이 "아빠가 엄마한테 잘해줘"라고 말해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면 여전히 함께 있다는 감각이 분명해진다고 했다. 그는 '떠났다'는 표현 대신, 마음속에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편지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대화이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고 했다. 멀리 하늘에 보냈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늘 마음속에 두고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었다.

“한 장의 손편지가 30년을 버티게 했다” 지난 1월 18일, 무안공항 12·29 여객기 참사 현장 울타리에 검은 리본과 웨딩베일, 추모 메시지가 걸려 있다. 송보현 기자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 모두의 '평화'를 이야기했다. 일상의 평화가 깨질 때 얼마나 큰 고통이 오는지를 손편지운동을 통해 매번 느낀다고 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특히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무게를 더 깊이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하나 점검하며 사회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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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시민들과 유가족에게 각각 말을 남겼다. 시민들에게는 바쁜 연말이지만 참사 1주기만큼은 잠시 멈춰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여달라고 당부했다. 유가족들에게는 이 고통의 늪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일상의 평화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금의 눈물과 아픔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한 장의 손편지가 30년을 버티게 했다” 무안공항에 설치된 추모우체통을 형상화한 그림 작품.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이사장이 추모 메시지를 담아 직접 그린 작품이다.



호남취재본부 송보현 기자 w3t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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