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려아연은 미국 내 아연 제련소 건설을 목표로 미국 정부와 협력을 통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미국 내 합작회사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확대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여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 이면에 내재한 위험 역시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기업 지배구조 약화로 인한 경쟁력 저하 가능성이다. 통상 합작회사는 현지 기업과 지분을 나눠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고, 해당 법인을 통해 사업에 직접 참여한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미국 내 합작회사가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그 자금이 다시 미국 제련소 설립에 투입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합작회사가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은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상증자 규모가 전체 주식의 10%를 넘는다는 점에서, 이는 향후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가 단순한 기업 차원의 사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이 보유한 제련 기술은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될 만큼 전략적 가치가 크다. 온산 제련소를 모델로 건설될 미국 제련소 역시 이러한 핵심기술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사실상 국가 핵심기술의 이전을 의미한다. 모기업 지배구조 변화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글로벌 경쟁자의 출현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외형상 합법적 이전의 틀을 갖췄다 하더라도, 기업과 국가 산업의 경쟁력이 점진적으로 약화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기술 유출을 막는다 해도 또 다른 위험은 남는다. 고려아연은 구조적으로 제로섬 게임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납아연연구그룹에 따르면 2026년 이후 아연과 납 시장은 공급과잉이 예상된다. 국내 온산제련소와 미국 제련소를 동시에 가동할 경우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막대한 건설비와 투자비를 감안하면 재무적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고려아연은 수익성 유지를 위해 양 제련소의 생산량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합작회사를 통해 미국 정부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라면, 미국 내 생산량을 고려아연 단독으로 조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둘째, 고려아연은 단순한 금속 가공 기업이 아니라 철강·배터리·반도체·디스플레이·방위산업 등 국가 핵심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다. 구조적 공백 관점에서 보면, 고려아연의 제품은 산업 간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상 대체재는 거의 없다. 따라서 고려아연에 생산 차질이나 공급 불안이 발생할 경우 그 영향은 연관 산업 전반으로 즉각 확산된다.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국가핵심기술의 보호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고려아연 제품과 연관된 산업 대부분이 우리나라 핵심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은 국가 기술 안보와 직결된 문제다. 이는 단순한 기업 전략을 넘어선 판단이다.
1974년 설립된 고려아연은 반세기 넘게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축적해왔다. 그러나 미국 제련소 건설을 위해 차입금 7조 원 전액에 지급보증을 서는 등 경영학적으로도 이례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무적 위험을 넘어, 지난 50년간 쌓아온 기업 가치와 미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기업 가치를 지켜내는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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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섭 선문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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