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AI 능력 증명한 바둑 대국
AI와 인간이 대결하는 시대 끝나
AI 잘 활용하는 자가 절대강자 올라
뉴욕타임스(NYT) IT전문기자 케이드 메츠가 쓴 'AI 메이커스, 인공지능(AI) 전쟁의 최전선(The Genius Makers)'은 지난 60년에 걸친 치열한 AI 기술전쟁의 기록이다. '딥러닝의 창시자' 제프리 힌턴,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 등 AI 혁명을 이끈 400여명의 숨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에는 한 명의 한국인이 나오는데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겨룬 이세돌 9단이다.
2016년 3월, 서울 광화문. 인간대표(이세돌) 대 AI(알파고)간 바둑 대국이 열렸다. 인간 직관과 창의성의 성역이었던 바둑 분야에 방대한 데이터 학습으로 무장한 AI의 도전이었다. 결과는 알파고의 4승1패, 일방적 승리였다. 인류 문명사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이세돌은 "다시 태어나면 AI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AI의 압도적 계산 능력 앞에 인간 직관이 무너진 바둑에 충격을 받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UNIST 특임교수와 AI 보드게임 작가로 활동하며 AI를 공부하고 있다.
"AI와 인간이 대결하는 시대는 끝났다. 서로 역할이 다르고, 이제 인간은 방향을 제시하고 마지막을 책임지는 존재가 돼야 한다." 이세돌은 은퇴 후 중요한 통찰을 남겼다. 그는 지난 5일 한국인공지능협회 'AI시대 인간의 경쟁력' 주제강연에서 "바둑을 배울 때 절대 두지 말라고 배우는 금기의 수가 있다. 그런데 AI는 그 자리에 거리낌 없이 돌을 놓는다"며 "고정관념에 갇힌 건 AI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AI가 인간의 학습과 성장을 돕는 강력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AI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이들이 각 분야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시대가 오고 있다. 현재 세계 바둑 일인자 신진서 9단이 대표적이다. 컴퓨터 같은 정확한 수로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으로 불리는 신진서는 AI로 바둑을 공부한 뒤로는 '절대 강자'에 올랐다. AI는 바둑 국가대표 훈련에도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가 됐다. 훈련의 70~80%가 AI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알파고의 등장에 바둑계는 우려를 했지만 상생의 길을 찾아 동행하고 있다.
'알파고'를 만든 허사비스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포드'를 개발해 202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AI 바둑 프로그램에서 시작한 신경망 기술이 인간과 협업으로 생명과학의 난제까지 풀었다는 평가다.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새 모델을 내놓던 AI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1주에서 1개월 단위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AI 기술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우리 정부도 엔비디아로부터 확보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내년 2월부터 중소기업·스타트업 등의 산업계와 학계·연구계, 국가 차원 AI 프로젝트에 배분한다고 밝히며 '글로벌 AI 3강'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이제 AI는 통제할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인간 세계에서는 1년 넘게 걸릴 일이 AI 세계에서는 단 하루도 안 되어 바뀌고 있다. AI 흐름에 한 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려운 불평등 사회의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이른바 '알파고 vs 이세돌 모멘트' 10년이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 AI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가. 10년 전 '이세돌 효과'를 왜 제대로 누리지 못했는지 복기해야 한다. AI와 대결을 넘어 협력으로 나의 능력을 증강하겠다는 자각이 '이세돌의 교훈'이다.
지금 뜨는 뉴스
조영철 콘텐츠편집1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