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지형이 재편되는 해…변화의 방향을 읽다
2026년의 기술 생태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질서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변화는 산업과 연구 현장, 도시 운영과 안보 영역까지 깊숙이 스며들었고, 그 결과 기술의 생애주기는 급격히 짧아졌다. 기술이 성숙할 시간을 기다려주던 시대는 끝났고, 적응하지 못한 기술은 소리 없이 뒤로 밀려난다.
이 변화는 특정 기술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전력 인프라, 연산 자원, 데이터 구조, 규제 체계, 글로벌 공급망이 동시에 재편되면서 기술이 놓이는 '환경'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반이 달라지면 같은 기술이라도 운명은 달라진다. 변화는 조용히 진행되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면 되돌리기 어렵다. 2026년을 기점으로 기술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2026년의 기술 생태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질서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변화가 산업과 연구 현장, 도시 운영과 안보 영역까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결과 기술이 성숙할 시간을 기다려주던 시대는 끝났고, 적응하지 못한 기술은 소리 없이 뒤로 밀려난다. 일출과 함께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아시아경제DB
떠오르는 기술: AI·데이터센터·저궤도 위성통신·기후테크, '기반을 바꾸는 기술들'
2026년에 떠오르는 기술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연산 자원(Compute)과 전력 인프라, 데이터센터, 저궤도 위성통신(LEO), 기후 대응 기술, 디지털 트윈 기반 도시 운영 시스템처럼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작동하는 기반'을 함께 바꾸는 영역에 집중돼 있다. 이 기술들은 단독으로 성장하지 않고 서로 결합하며 산업과 국가 시스템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의 출발점에는 AI가 있다. 다만 2026년의 AI는 더 이상 '말을 잘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AI는 계산을 통해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연구실과 기업 현장에서는 AI가 실험 설계와 후보 탐색, 데이터 해석을 주도하며 인간 연구자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 변화는 과학기술 연구 현장에서 가장 먼저 가시화됐다. 신약 개발, 배터리, 촉매, 신소재 연구에서는 AI가 후보 물질을 탐색하고 실험을 설계하며, 자동화된 실험 시스템이 이를 검증한 뒤 다시 AI가 다음 단계를 계산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연구의 중심은 개별 실험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계산을 빠르게 반복할 수 있는지로 이동했고, 연구 속도는 수년 단위에서 수개월, 때로는 수주 단위로 압축되고 있다.
연산 중심 구조는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 구조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2026년에는 특정 연산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신경망처리장치(NPU)와 주문형 반도체(ASIC), 그리고 이를 수용할 데이터센터와 전력 공급 능력이 경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연산 자원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곧 기술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산에서 행동으로, 기술이 '시스템'이 되는 순간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AI 기술 총괄은 이러한 변화를 "AI는 Brain이지만 Brain은 Body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Body는 사무 환경에서는 메일·결재·업무관리 시스템처럼 조직의 정보기술(IT) 인프라 자체를 의미한다. AI가 자료를 요약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메일을 발송하고 문서를 공유하며 실제 업무 흐름을 완성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지시 방식도 변한다. 과거처럼 세부 작업 방식을 하나하나 지시하기보다 목표와 맥락을 제시하면 AI가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산 자원 확보는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조직과 산업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조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통신과 우주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저궤도 위성통신은 실제 서비스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며, 통신망 확장을 넘어 재난 대응, 기상 관측, 항공·해양 산업과 직접 연결되고 있다. 위성과 지상 인프라, 데이터 처리 능력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기후 기술 역시 산업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탄소 포집·활용(CCU) 기술은 규제 대응 수단을 넘어 산업적 가치 창출 기술로 전환되고 있으며, 탄소를 비용이 아니라 자원으로 다루는 접근이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연산 능력과 데이터 분석, 공정 자동화는 기술 확장의 핵심 조건이 되고 있다.
도시와 전력 인프라의 변화는 이러한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AI는 교통, 에너지 관리, 재난 대응 등 도시 운영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고,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는 핵심 기반시설로 재정의되고 있다. 최운호 서강대 교수는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의미가 달라진다고 진단한다. 그는 메타버스가 단순한 가상 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트윈과 결합해 도시 운영과 산업 현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라지는 기술: 쿠키 광고·전통 예보·내연기관, 중심에서 밀려나는 기술들
2026년에 사라지는 기술은 '쓸모없어진 기술'이 아니다. 쿠키 기반 광고나 전통적 수치예보, 단순 기계적 재활용, 내연기관 중심 산업처럼 AI와 연산 인프라 중심으로 재편되는 환경에서 더 이상 핵심 역할을 맡기 어려워진 기술들이다. 이 변화는 소멸이 아니라, 산업과 정책의 중심에서 물러나는 과정에 가깝다.
쿠키 기반 광고 생태계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 강화와 기술적 비효율성, AI 기반 문맥 광고의 성장으로 지속 가능성을 잃고 있다. 광고 기술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 성장의 중심축에서 내려오는 흐름이다.
전통적인 수치예보 모델도 변곡점에 서 있다. AI 기상모델은 예측 속도와 정확도에서 기존 방식을 앞서는 사례를 늘리고 있으며, 예보의 주도권은 점차 AI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공공성과 책임성이 큰 영역일수록 기술의 교체보다는 역할의 재배치가 먼저 진행된다.
플라스틱 재활용 분야에서도 기존의 단순 기계적 재활용 방식은 복합 소재와 나노플라스틱 문제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비·부품 산업 역시 완만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축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AI가 촉발한 변화의 시대. 기술의 명암이 갈리고 있다. 국내 AI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네이버와 파란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치열한 기술 경쟁이 펼쳐질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기술이 뒤처진 게 아니라, 환경이 바뀌었다
성 총괄은 "텍스트 영역의 할루시네이션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지만,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음성을 함께 처리하는 옴니모달(Omnimodal) AI로 갈수록 새로운 형태의 오류가 등장한다"며 책임 구조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그는 "기술적으로 오류를 줄일 수는 있지만, 최종 책임을 AI가 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음에도 새로운 환경에서는 중심 역할을 맡기 어려운 영역이 생긴다는 의미다.
배터리 연구 방식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반복적이고 느린 단일 공정 중심 연구는 AI와 로봇 기반 자동화 연구 생태계에 밀리고 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연구 환경과 경쟁 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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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기술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다만 그 연속선 위에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떤 기술이 더 새롭냐가 아니라, 어떤 기술이 새로운 인프라와 질서에 적응했느냐가 기술의 운명을 가른다. 떠오르는 기술은 그 질서 속으로 이동하고, 사라지는 기술은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난다. 기술의 지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바뀌고 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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