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기후부·원안위 업무보고서
대왕고래·해상풍력·원전 등 이슈로
"원전은 효율성·타당성·필요성 놓고 토론해야"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업무보고에서 에너지 분야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에너지 이슈가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현상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원전에 대해서는 효율성, 타당성, 필요성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이 대통령의 화살을 가장 먼저 맞은 곳은 한국석유공사였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 당시 추진했던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인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 대통령 "개발 가치 모르는데 수천억 투자해야 하나"
이 대통령은 "대왕고래에서 석유가 난다고 치고 계산했을 때 배럴당 생산원가는 어느 정도로 추산했나"고 질문했다. 이에 최문규 석유공사 사장 직무대행이 변수가 많아 계산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답하자 이 대통령은 "변수가 많으면 안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개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에 수천억 원을 투자할 생각이었냐"고 추궁했다.
이 대통령은 누적 부채 20조원에 자본잠식 상태인 석유공사의 경영 정상화 방안에 대해서도 물었다. 최 직무대행은 "해외 자산 중 불량자산을 매각, 우량자산 위주로 재편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불량자산 판다고 개선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부정적으로 답했다.
기후부 업무보고에서는 해상풍력의 발전단가가 이슈가 됐다. 이날 기후부는 해상풍력의 발전단가를 킬로와트시(kWh)당 330원에서 250원 이하로, 육상풍력은 180원대에서 150원대로, 태양광은 100원 이하로 낮추겠다고 보고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해상풍력은 발전단가를 낮추더라도 250원인데, 왜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우리나라는 바닷바람의 양이나 질이 좋아 대량으로 생산하기 좋다"며 "지금은 설비 규모가 0.3GWh에 불과해 330원이지만 대폭 확대하면 단가를 200원대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태양광보다 비싼데 왜 해상풍력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심진수 기후부 재생에너지정책관이 "해상풍력을 제2의 조선플랜트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다"며 "해외 사례를 보면 3GW, 10GW 이상 설치하면 150원 이하로 내려간다"고 답했다. 이호현 기후부 2차관도 "2035년이면 25GW 이상 설치해서 단가를 150원 수준으로 낮추겠다"며 "선박도 있어야 하고 항만, 케이블 등 인프라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거들었다. 그제야 이 대통령은 '지금은 투자과정이다, 이 말씀이군요"라며 수긍했다.
이 대통령은 발전 공기업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공기업은 존재 자체가 국가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라며 지나친 수익성 추구로 인해 산재나 임금 착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는 악질이 아닌 모범적인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며 "효율 만능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원전에 대해서도 민감한 질문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원전을 새롭게 시작해서 하나 짓는 데 얼마나 걸리냐"고 질문했다. 지난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을 짓는데 15년 걸린다"고 언급한 이후 논란이 커진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실제로 10~15년 걸린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김 장관은 민주당이라 못 믿겠다"며 정치색이 없는 참석자의 발언을 구했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 전대욱 사장 직무대행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13년 11개월 걸린다"며 "부지선정에 2년, 인허가에 3년 4개월, 착공부터 준공까지 7년 7개월 걸린다"고 설명했다.
원전 문제엔 "당적이 없는 사람이 얘기하라"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설계인가를 2028년, 건설 허가를 30년에 받고 2035년에 짓겠다는 계획인데 낙관적인 전망 아닌가? 실현될 것이란 보장은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전대욱 사장 대행은 "저희가 보기에 기술적인 부분이나 세계 에너지 수요 수급을 보면 필요하고 충분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SMR의 위험성이 기존과 다른지도 따져 물었다. 이에 전 사장 대행은 "기술적으로 기존 대형 원전의 1000분의 1"이라며 "일체형으로 만들었으며 사고가 나면 (원자로를) 바로 수조에 담그는 방식이라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를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일부에서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부피가 크게 줄어든다고 하는데 맞느냐"고 물었다.
이에 최원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5분의 1로 줄어든다"고 답하자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한·미가 8000억원을 들여 연구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며 엇갈리는 대답을 내놨다. 조성돈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중 50%가 재처리할 수 없는 중수로형"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프랑스 등 해외 원전 운영 국가의 재처리 사례에 대해 묻자 이호현 기후부 2차관은 "습식 재처리를 하고 있는 프랑스는 부피가 5분의 1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우리가 미국과 공동 연구하고 있는 건식 방식은 부피가 크게 줄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습식 재처리의 경우 핵무기의 원료로 쓸 수 있는 플루토늄이 추출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일부에서는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매우 유용한 자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며 "당이 없는 사람이 얘기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원자력을 전공한 임승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장은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3~4년 태우면 원래 농도 4%였던 우라늄235가 1%만 남고, 우라늄238중 0.5%는 플루토늄으로 변화한다"며 "남아있는 우라늄을 재활용하자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플루토늄은 핵무기로 쓰거나 발전소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발전소용으로 사용할 경우 순수 우라늄만 사용하는 것보다 기술적으로 까다롭다고 임 원장은 설명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원전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 대해 "우리 사회가 편먹고 싸우기만 하지 진지한 토론을 안 하다 보니 진실이 아닌 게 진실인 것처럼 유통된다"며 "원전도 효율성, 타당성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지 정치 의제기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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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과학적 논쟁을 하는데 니편 내편을 나누고 있다"며 "희한하게 과학자들도 편을 나눈다"라고도 했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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