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머런 감독 '아바타: 불과 재'
판도라 내부 균열을 전면에
제국주의가 만든 '협력자'의 비극
정치·사회적으로 양분된 지금 세계 닮아
제국은 언제나 내부자부터 포섭한다. 전면전보다 효율적이고, 정복보다 통치에 유리해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불과 재'는 이 오래된 전략을 판도라로 옮겨 놓는다. 인간과 나비족의 대결 구도를 유지하면서,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균열을 전면에 드러낸다.
시리즈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자연스러운 변화다. 2009년 '아바타'가 인간과 나비족의 충돌로 생태계 파괴와 식민주의의 폭력을 고발했다면, 2022년 '아바타: 물의 길'은 가족과 부족의 연대를 통해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아바타: 불과 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같은 판도라 안에서 서로 다른 가치와 선택이 공동체를 어떻게 갈라놓는지를 묻는다.
제국주의의 오래된 통치 전략
설리 가족은 전편에서 장남 네테얌을 잃었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판도라는 다시 인간에 의해 흔들린다. 이 틈을 파고드는 존재가 망콴족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해온 나비족과 달리, 폭력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다. 지도자 바랑은 인간 침략자들과 결탁해 판도라의 질서 자체를 흔든다. 화산 재해로 터전을 잃은 그는 더 이상 에이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는 반복돼온 제국주의의 통치 방식과 닿아 있다. 제국의 정복은 외부의 폭력으로 시작되지만, 완성은 내부에서 이뤄진다. 원주민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말이 통하는 지도자 한 명을 먼저 포섭하는 전략이다.
19세기 미국은 체로키 족장 존 로스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였다. 그는 무력 저항 대신 법과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문명화된 부족'으로 남으면 조상의 땅과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이 뒤따랐다. 그러나 1838년 미국 정부는 조약을 파기했고, 체로키는 강제 이주 대상이 됐다. 이 비극은 '눈물의 길'로 기록됐다. 영국의 인도 지배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인도인 병사와 토착 군주를 앞세워 식민지를 통치했다. '세포이'로 불린 인도 병사들은 1857년 항쟁 진압의 주력이 됐다. 침략은 인도 내부의 질서 회복으로 포장됐다. 질서가 안정되자 협력자들의 권한은 축소됐고, 약속은 폐기됐다.
에이와의 침묵, 오해와 필연
바랑이 적대하는 인물은 에이와와 부족의 질서를 상징하는 네이티리다. 개인적 증오라기보다, 전통 세계를 부정하려는 정치적 판단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아바타: 불과 재'는 근본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에이와는 왜 그동안 간절한 외침에 응답하지 않았나.
에이와는 판도라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 지주지만, 개별 부족의 위기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 침묵은 망콴족과 바랑에게 결정적 균열로 남았다. 그들은 자연이 자신들을 외면했다고 믿었고, 그 결과 인간이 제공하는 힘에 기댄다. 에이와를 '신'으로 이해하면 이 침묵은 설명되지 않는다. 에이와는 기도에 응답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판도라 전체 생태계의 연결과 기억, 균형이 집적된 체계다. 선악이나 정의를 판단하지 않으며, 특정 부족의 생존을 우선하지도 않는다. 개입의 기준은 오직 전체 생태계가 더 이상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느냐. 이 관점에서 보면 망콴족의 분노는 오해이자 필연이다. 화산 재해로 터전을 잃으면서 에이와의 침묵이 방기로 받아들여졌다. 바랑은 이를 '버림받음'으로 해석했고, 에이와와의 연결 대신 인간과 손을 잡는다. 에이와의 체계와 피해자들이 체감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 분노와 결탁을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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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불과 재'에서 에이와는 멸종 위기의 생태계를 하나로 집결시킨다. 신적 존재를 넘어 기억과 경험이 축적되는 네트워크이자, 단절된 공동체를 다시 잇는 연대의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후반부, 죽은 동족과 부족이 에이와를 통해 연결되는 장면에선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집단적 필요까지 가리킨다. 여기서 영화는 지금의 현실을 비춘다. 정치·사회적으로 양분된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배제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기술은 고도화됐지만, 더 잘 연결되지 않는 아이러니다. 캐머런 감독은 이 단절의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에이와라는 존재를 형상화한다. 결국 '아바타: 불과 재'는 판도라의 이야기이자,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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