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시장성증권에서 대출채권까지 확대
필요시 대출채권 담보로 긴급 여신 지원 가능해져
금융기관 자금조달 수단 확충…"금융시스템 안정에 기여할 것"
한국은행이 유동성 지원을 위한 금융기관 대출 담보에 대출채권을 추가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 이후 유동성 리스크에 대비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은행 자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출채권까지 담보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긴급여신에 관한 규정'을 의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기존 시장성증권(은행채·우량 회사채·국채 등)에 더해 대출채권을 담보로 상시 대출(자금조정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골자다. 봉관수 한은 통화정책국 신용정책부장은 "한은은 금융기관에 대출을 할 수 있고, 다만 중앙은행은 손실을 봐서는 안 된다는 원칙하에 반드시 양질의 담보를 수취해야 한다"며 "(이번 결정은) 양질의 대출채권에 대한 활용 가능성을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금융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뱅크런 등 유동성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 실제 2023년 미국 SVB에서는 SNS 등을 통한 불안심리 확산으로 이틀 만에 예금의 85%가 인출됐고, SVB 영국법인에서도 하루 만에 30%의 예금이 이탈하는 등 유동성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봉 부장은 "이후 중앙은행 대출제도의 유동성 안전판 역할을 강화할 필요성이 증대됐다"며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대규모 예금인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자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출채권을 사전수취해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6월말 기준 은행의 총자산 중 대출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69.8%에 달한다.
이번 결정에 따라 금융기관이 자금조달 불균형 등으로 유동성이 악화하거나, 전산장애 등으로 지급자금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지는 등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이 필요할 경우 금통위 의결을 통해 대출채권을 담보로 긴급여신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대출채권 담보 범위는 법인기업의 부동산담보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과 신용대출 중 차주의 신용등급이 양호(BBB- 등급 이상이거나 예상부도확률 1.0% 이내)한 경우로 한정했다. 상호연계 위험 방지를 위해 금융사와 대주주 및 계열사 등 특수관계사에 대한 대출채권은 제외했고, 신용위험을 고려해 선순위 대출만을 인정하기로 했다.
봉 부장은 "1차적으로는 시장성증권을 담보로 유동성을 공급하겠지만, 유사시에는 금통위가 의결을 통해서 대출채권을 담보로 유동성을 지원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이런 제도 도입이 은행의 시장성증권 만으론 유동성 위기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중층적인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김범서 통화정책국 여신담보기획팀장은 "이번 조치로 금융기관이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할 경우 시장성증권을 투매하지 않고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돼 금융시장 불안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금융기관이 비상자금조달 수단을 확충할 수 있게 됐으며, 이 경우 시장성증권 담보 대출에 비해 금융기관의 유동성비율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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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올해 말까지 금융기관과의 IT시스템 테스트 등 사전 준비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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