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여성이 발의한 여성징병제
"여성도 군대가야 권리 자격 주어져"
저출산·고령화 상황서 전세계적 논란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스위스에서 여성에게도 의무복무를 적용하자는 헌법 개정안이 최근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면서, 유럽 각국에서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확전 우려가 커진 데다 유럽 전반에 저출산·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병력 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남성 인력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주장과 여성까지 징집하면 저출산을 더 악화시킨다는 반론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스위스 여성징병제 발의한 '여성'…"군대가야 권리행사 자격 주어져"
스위스에서 여성 징병제 국민투표 발의의 중심에 선 인물은 37세 여성 노에미 로텐이다. 그는 2013년 ‘시민복무’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해 여성도 징병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스위스는 10만명 이상 서명을 받아 등록하면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데, 시민복무는 2023년 10만명 이상의 서명을 모아 개정안을 성립시켰다. 이들이 겨냥한 조항은 스위스 헌법 59조다. 현행 헌법은 남성 시민권자를 징병 대상자로 규정하고, 여성은 자발적 복무가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로텐 측은 이를 ‘성별과 관계없이 시민권자 모두’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로텐은 진보적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본인 역시 자발적으로 군복무에 지원해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하고 제대했다. 그는 “여성도 군대를 가야 진정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논리를 폈다. 더 나아가 군대에서 남성들이 경험하는 특수한 인간관계와 조직생활을 여성도 반드시 거쳐야 사회생활의 생리나 관계 형성, 조직 내 승진과 역량 면에서 불리함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남녀평등을 위해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거나 ‘여성도 군복무로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논지는 과거 200여 년 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도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스위스 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다수 여성단체가 제안에 반대했고, 남성층뿐 아니라 고령층에서도 거부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민투표 결과는 반대가 84%를 넘기며 개정안은 부결됐다. 스위스 정부 역시 여성 징병제에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육아에 투입될 시간을 빼앗아 중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여성 인력까지 군대로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덴마크는 지난 7월 여성 징병제 도입을 공식 발표했지만, 스위스에서처럼 거센 사회적 반발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는 제도 구조의 차이가 크다. 덴마크는 상비군이 약 2만명 규모로, 매년 18세 이상 성인 남녀 가운데 4000~6000명 정도를 징병한다. 신체검사는 남녀 모두 받되, 그중 10%도 안 되는 인력만 선발하는 제한적 징병제에 가깝다. 노르웨이·스웨덴 등 유럽의 여성 징병제 실시 국가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운용한다는 점에서 덴마크의 제도는 ‘전 국민 의무복무’와는 성격이 다르다. 평시에는 체력이나 성향 등 군 복무에 적합한 소수만 뽑는 형태이니, “모두가 가야 한다”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아 반대 여론도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스위스의 징병제는 이와 다르다. 스위스는 한국과 비슷한 형태로, 장교 수는 4000명 내외로 적은 반면 정규군 병사는 15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가 900만명이 채 안 되는데도 병력 규모가 프랑스·영국·독일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체검사를 받은 남성의 상당수가 ‘선발’이 아니라 사실상 의무적으로 군에 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여성까지 대상을 넓히자는 논의가 곧바로 ‘대규모 강제 징집’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보 환경 차이도 크다. 덴마크는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육지로 직접 맞닿지 않더라도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충돌 가능성을 상정해야 하는 북유럽 국가다. 반면 스위스는 동유럽 전장과 수천 km 떨어진 내륙국가이며 러시아와의 관계 자체도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 “지금 당장 여성 징병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징병제 도입 둘러싸고 논란 커진 독일…MZ 남성들 반발
유럽에서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장 뜨거운 곳으로는 독일이 거론된다. 독일은 유럽 나토(NATO) 전력의 중심축이자, 동유럽에서 유사시 병참기지 역할을 떠맡을 가능성이 큰 나라라는 점에서 병력 증강 압박이 크다. 독일 정부는 2027년부터 자원병이 부족할 경우 남성을 그 부족분만큼 강제 징집할 수 있도록 ‘징병제 부활’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서 젊은 남성층, 이른바 MZ세대가 “왜 남자만 징집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여성의 자발적 군복무가 가능하고 여군 비율도 적지 않다. 전군 규모가 약 18만명인데 여군이 약 2만5000명으로, 절대 규모나 비율 모두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여군 비율이 더 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대다수 젊은 여성과 여성단체, 정치권 전반은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여성 징병제에 부정적이다.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성까지 강제 징집하면 저출산이 더 심화되는 악순환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여성 징집이 국가 이미지에 미칠 영향도 반론의 주요 근거로 제시된다. 이는 자국이 사실상 분쟁지역임을 정부가 공인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외부 투자와 대외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군사적 긴장 상태가 증시에 할인 요인으로 작용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표현이 반복돼 온 한국의 사례를 떠올리면, 여성 징병이 반드시 국익에 좋은 선택만은 아니라는 논리다.
저출산·고령화 한국서도 중대한 과제…국방 VS 남녀평등 가치
이 논쟁은 유럽의 문제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여성 징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반대 여론이 반복적으로 충돌해 왔고, 앞으로도 쉽게 결론이 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방의 필요와 남녀평등 가치가 첨예하게 맞물린 이슈인 데다, 제도화 자체가 단기간에 가능한 성격이 아니라서다. 징병제는 단순히 입영통지서를 보내고 훈련을 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는 수십만명을 관리해야 하고, 경제활동에 투입될 산업 인력을 대규모로 방위력에 전환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사회적 조정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근대 이후 여성 징병제를 실시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제도 설계의 난도가 더 높다는 지적이 따른다. 징병 대상자를 어떻게 설정할지부터 시작해, 훈련 환경과 지휘 체계까지 광범위한 재설계가 요구된다. 예컨대 훈련 교관을 남성 중심으로 운용할 경우 발생할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여성 교관 인력 확보가 필요하고, 병영 내 숙소와 생활 편의시설을 갖추는 문제 역시 비용과 시간이 크게 드는 과제로 꼽힌다.
남녀 징병제를 건국 초기부터 도입해 약 80년 가까이 운용해 온 이스라엘조차 여전히 수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은, 여성 징병제가 “결정만 하면 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 침공과 관련해 여성 정보대원들이 침공 위험을 상부에 먼저 알렸지만 남성 상관들이 이를 무시했다가 사태가 커졌다는 사례가 거론된다. 병영 내 여성에 대한 차별적 문화와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하고, 이런 변화는 결국 비용과 사회적 합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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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전쟁의 장기화와 안보 불안, 인구구조 변화라는 ‘복합 압박’ 속에서 여성 징병제를 새로운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스위스의 압도적 부결은 그 논쟁이 단지 군사 인력의 수급 문제가 아니라, 시민권·평등·가족·경제·국가 이미지까지 얽힌 사회 전체의 선택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켰다. 각국 사정은 다르지만, 어느 쪽이든 사회적 양보와 타협 없이는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에서 ‘여성 징병제’는 당분간 유럽과 한국 모두에서 뜨거운 논쟁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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