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37)
도요타·테슬라·BYD 등 경쟁사 분석
BYD, 기술·생산·가격 '삼박자'로
중국식 혁신 모델로 전기차 점유율 1위
무역 장벽·브랜드 강화 등 해외 진출 과제도
비야디(BYD)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다.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1위 업체로, 단일 브랜드 기준 점유율이 20%에 육박한다. 지난해 글로벌 판매는 전년 대비 43%나 늘었고, 최근 4년 연속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BYD의 이 같은 고속 성장은 중국 시장 덕이 크다. 지난해 세계에서 거래된 전기차 10대 중 6대가 중국에서 팔렸을 정도로,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다. 인구 14억명의 초대형 시장에 전기차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중국 1위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글로벌 1위로 올라섰다.
올해도 이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 누적 기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43%에 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애국 소비' 심리가 강화된 데다 현지 전기차 브랜드의 기술력과 디자인 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된 영향이다. 중국 시장은 이제 해외 브랜드에 '난공불락의 요새'가 됐다. 한때 10%를 넘었던 현대차·기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이제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나아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식 혁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후발주자임에도 기술·생산·가격 경쟁력 삼박자를 모두 갖춘 새로운 혁신 모델을 구현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잡지 못하면 글로벌 1위의 꿈도 멀어진다. 글로벌 경쟁자들마저 긴장하게 만든 '중국식 혁신'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BYD를 통해 그 의미와 원동력을 짚어본다.
중국식 혁신, 이윤보다는 이미지
중국식 혁신은 이윤보다 '혁신의 이미지' 그 자체를 추구한다. 자동차 마케팅 업계에서는 "미국 소비자는 성능을 사고, 유럽 소비자는 브랜드를, 중국 소비자는 혁신을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신기한 기능, 즉 '혁신 그 자체'를 좇는 경향이 강하다. 안전성이나 내구성, 품질의 완성도보다는 기술적 신선함과 차별성이 집약된 자동차를 더 선호한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혁신의 총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BYD는 치열한 기술 경쟁 속에서 '혁신 경쟁'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 무대는 BYD가 가장 자신 있는 배터리 분야다. 지난 3월 공개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슈퍼 e플랫폼(Super e Platform)'이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BYD는 이 플랫폼에 최고 출력 1000㎾, 최고 전압 1000V에 달하는 초고출력·고전압 시스템을 적용했다. 내연기관차의 주유 시간과 맞먹는 충전 속도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그전까지 가장 빠른 충전 기술을 가진 브랜드는 현대차였다. 2021년 현대차는 350㎾ 출력, 800V 전압을 지원하는 전용 플랫폼 E-GMP를 양산차에 도입했다.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에 18분이 걸리는 '초급속 충전'을 실현한 바 있다.
BYD는 이 기록을 4년 만에 뛰어넘었다. '5분 충전으로 주행거리 400㎞ 확보'가 가능한 신기술을 내놓은 것이다. 출력과 전압 모두 현대차(350㎾·800V)를 넘어섰고, 테슬라가 최근 선보인 최대 500㎾ 충전이 가능한 4세대 슈퍼차저보다도 높은 성능을 구현했다.
지난 6월 중국 선전에 있는 BYD 본사에서 '슈퍼 e플랫폼' 충전 시연을 해봤다. 플래그십 전기 세단 '한(漢) L'의 충전구를 열고 커넥터를 연결하자 차가 순식간에 전력을 흡수했다.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주행 가능 거리가 15㎞에서 400㎞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4분49초였다.
BYD의 '5분 충전으로 400㎞ 주행' 발표가 과장이 아니라는 점을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다. BYD가 초고속 충전 기술을 처음 공개했을 때 업계는 회의적이었다. 발열과 내구성 문제가 걸림돌로 지적됐다. BYD는 배터리 안정성이 높은 LFP(리튬·인산·철) 기술을 채택하고 열관리 기술을 강화하며 발열 문제를 최소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초급속 충전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업계는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BYD는 기술 상용화 속도나 당장의 이윤보다 '혁신 선도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뒀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통해 브랜드의 기술 리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전략이다.
배터리부터 완성차까지… 수직 계열화와 속도전
BYD의 또 다른 강점은 수직계열화된 부품 공급망이다. 배터리부터 모터, 구동부품, 전력전자, 차량용 반도체, 차체와 플랫폼, 완성차 조립까지 자동차 가치사슬의 대부분을 내부에서 자체 개발·생산한다. BYD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차 한 대에 필요한 부품의 75~80%를 BYD가 직접 생산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도 보기 드문 구조다.
BYD의 이러한 체계는 '배터리 기업에서 출발한 제조사'라는 출생 배경에서 비롯됐다. 1995년 왕촨푸(王傳福) 회장이 창업한 BYD는 원래 배터리 셀 생산 기업이었다. 휴대폰 배터리나 니켈·리튬이온 배터리를 공급하며 성장했고, 2003년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면서 기존 배터리 기술을 전기차 생산에 접목했다.
배터리 기술 내재화는 BYD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 BYD는 자회사 '핀다'를 통해 배터리 셀, 모듈, 팩까지 모두 자체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블레이드 배터리' 같은 독자 기술을 확보했고, 이는 안전성과 내구성 측면에서 LFP 배터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BYD는 원재료 확보를 위해 리튬·코발트 등 핵심 광물 채굴권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핵심 부품을 내부 계열사에서 직접 개발·생산하는 구조는 ①원가 절감 ②공급망 안정성 ③기술 독립성 확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BYD는 외부 부품사 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이나 해상 물류 지연 사태 때도 상대적으로 타격을 적게 받았다. 핵심 부품을 직접 설계·제작하기 때문에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르고 결과적으로 '혁신적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체 공장에서 모든 부품을 조립·생산하기 때문에 시장 수요 변화에 따른 생산 속도 조절에도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다.
BYD의 빠른 혁신 속도는 단지 기업 시스템만의 결과는 아니다. 중국식 사회·문화적 배경도 한몫을 차지한다. BYD는 최근 몇 년 만에 세계 곳곳에 10여개 공장(중국 9개·해외 5개 내외)을 지었다. 해외 공장만 보더라도 착공에서 가동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12~16개월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글로벌 완성차 공장(보통 2~3년 소요) 대비 절반 수준이다.
이는 중국식 혁신의 속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전 한국식 산업화 속도를 중국이 따라잡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주 52시간제나 강력한 노동조합 등으로 생산 유연성이 제약되는 한국·유럽식 구조와 달리 중국은 근로시간 유연성과 정책 지원, 신속한 행정 승인 덕분에 '결정→착공→가동'의 리드타임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이 같은 구조가 노동자 친화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혁신과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사회적 환경은 '중국식 혁신'이 작동하는 핵심 동력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유럽·미국 장벽 앞에 선 BYD, 다음 과제는
급성장하던 BYD도 최근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1위(2025년 1분기 기준 약 42%)를 기록하고 있지만 내수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지면서 성장의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시장 전체의 성장세가 완만해지자 과잉 설비투자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시황이 좋을 때 공격적으로 증설했던 생산 능력이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에 직면했다.
이런 이유로 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BYD가 2025년 1분기 글로벌 시장에 판매한 100만대 중 20만대는 유럽과 남미,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수출됐다. 올해 말부터는 유럽 현지 생산을 위한 연간 80만대 생산 규모의 헝가리 공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특히 BYD는 유럽 등 고부가가치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같은 차종이라도 유럽 시장에서 팔리는 차량 평균 판매 단가가 중국보다 3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BYD의 엔트리급 전기차 '돌핀 서프(2025년형)'의 독일 판매 가격은 2만2990유로(약 3800만원)부터, 같은 플랫폼의 중국 내수용 모델 '시걸'은 5만6800위안(약 1060만원)부터 시작한다. 중국에서 1000만원대에 팔리는 차가 유럽에서는 3000만원대에 팔리는 셈이다. 3배 이상 비쌈에도 불구하고 유럽 브랜드 전기차와 비교하면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있다. 폭스바겐의 소형 전기차 ID.3의 독일 판매 가격은 5000만원대(약 2만9760유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의 가격 경쟁력을 견제하고자 유럽 내에서는 "중국 브랜드가 중국 정부 보조금 덕에 지나치게 싼 가격에 전기차를 판다"며 공정 경쟁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유럽연합(EU)은 2024년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전기차가 유럽 제조업의 경쟁력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시장은 상황이 더 까다롭다. 미·중 갈등 심화로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는 한편 부품 원산지와 데이터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사실상 중국 완성차의 미국 시장 진입을 봉쇄한 것이다. BYD도 멕시코를 통한 우회 수출을 검토했지만 결국 철회했다.
최근 BYD는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 '신의 눈(God's Eye)'의 전 차종 확대를 선언하기도 했다. 고급차에 국한됐던 기술을 중·저가 모델로 확산해 자율주행 기술의 대중화를 노린 전략이다. 기술 접근성을 무기로 글로벌 자율주행 경쟁에서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지난 6월 중국 선전에서 시승한 BYD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仰望)'의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U8'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만 입력하면 길찾기부터 신호 인식, 주차까지 차량이 스스로 수행했다. 도로 위 주행 전 과정이 운전자 개입 없이 이뤄질 만큼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도는 이미 경쟁 완성차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인상을 줬다.
BYD의 약진이 현대차그룹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현대차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미국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동차 시장이자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겨루는 핵심 무대다. 이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곧 브랜드 신뢰와 수익성을 동시에 입증하는 일이다. BYD 등 중국 브랜드가 발을 들이지 못한 틈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입지를 굳혀야 다가올 전기차 시대의 글로벌 점유율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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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도·동남아·중남미·중동 등 신흥 시장에서의 한중 전기차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브랜드보다 가격 경쟁력이 구매 결정의 핵심 요인이다.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으로는 현대차, BYD, MG(상하이차), 지리자동차 등이 꼽힌다. 결국 앞으로 신흥 시장은 '저가 전기차 전쟁터'가 될 것이며 이곳에서 살아남는 기업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BYD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의 플래그십 SUV U8는 브랜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신의눈)의 최고급 사양을 적용했다. 반자율주행 기능은 물론 신호등 인식, 자동주차까지 가능하다. 우수연 기자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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