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패권의 新항로]③
북극 다자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1996년 북극이사회 설립을 계기로 수십 년 넘게 이어져 온 북극권 국가들의 네트워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러시아는 2021년 초 이후 북극과 관련한 다자 협력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자연스럽게 덴마크·노르웨이 등 북극권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반(反)러시아' 연대가 형성된 모습이다. 전쟁 장기화로 이 같은 구도가 더욱 굳어진 가운데 개최된 올해 북극서클총회는 마치 러시아를 향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개최된 북극서클총회의 개막일 첫 세션은 '트럼프와 푸틴, 북극 다자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란 주제로 진행됐다. 미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강대국 일방주의'는 현시점 북극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다. 정작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북극권의 관심을 반영하듯 행사장 좌석은 물론 복도까지 서서 들으려는 청중들로 꽉 들어찼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개최된 '2025 북극서클총회'에서 참석자들이 '트럼프와 푸틴, 북극 다자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손선희 기자
진행을 맡은 에다 아야이딘(Eda Ayaydin) 런던대 파리연구소 국제정치학 교수는 "제도를 거부하고 권력을 개인화하는 포퓰리스트 리더에게 북극은 '쇼를 위한 무대'가 된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극 지역 군사화가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행동은 그동안 북극 거버넌스를 유지해 온 협력과 규범 기반의 질서를 교란시킨다"고 지적했다. 아예 러시아를 배제하고 북극 이사회를 다시 구성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셀린 로드리게스(Celine Rodrigues) 포르투갈 리스본대 박사는 "다자주의를 재정의하려면, 북극이사회를 재구성해야 할 수도 있다"며 "새 이사회는 1996년 (첫 설립 당시) 제외됐던 안보·방위 주제 논의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북극이사회 의장국을 맡은 덴마크의 라스 뢰케 라스무센 외교장관은 개막 본회의 연설에서 "1996년 이래 북극이사회는 협력의 초석이 돼 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며 "불행히도 북극은 더 이상 '저긴장(low tension) 지역'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북극에서 직면한 도전은, 좁은 국익을 넘어 공동선을 위한 집단적 행동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라며 다자주의의 회복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북극권 유럽 국가들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북극 관련 논의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쉽지 않다. 러시아는 전체 북극 연안의 50~60%와 맞닿아 있고, 빙하가 가장 많이 녹아 뱃길로 사용할 수 있는 북동항로(Northern Sea Route)의 항구 등 인프라도 대부분 러시아 소유다. 무엇보다 실제 운항 경험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한국을 비롯해 향후 북극항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비북극권 국가들 입장에서도 러시아는 손잡지 않을 수 없는 상대다.
북극권 바다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서는 결국 다자협력을 통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이 필수적이다. 이는 '실용외교'를 추진하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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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배 주러시아 대사 내정자는 "러시아는 우리와 ‘바다와 하늘을 같이 쓰는 나라’"라며 "2013년 (한국이) 북극 이사회 옵서버 국가로 가입할 때도 당시 의장국이었던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도 한국과의 조선 분야 협력에 관심이 있을 테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로 (교류가) 쉽지 않다"며 "결국 북극 협력을 위해서는 항구적 평화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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